삼국시대 전기에 용인지역이 백제에 속했던 것은 확실하지만 그에 관한 구체적인 문헌자료나 유적 유물이 발견되지 않았다. 그러나 지난 95년 한신대학교의 수지 2지구에 대한 문화유적 지표조사에서 백제 전기의 주거지가 발견됐다.
이 유적은 비록 대규모의 취락지는 아니었어도 다수의 철기가 수습된 점, 그리고 완형에 가까운 토기들이 일괄로 출토된 점 등 학술적으로 중요한 정보들을 다양하게 확보해 한성시대 백제 문화를 규명하는데 크게 일조하는 것으로 평가됐다.
현재는 이 일대에 아파트 숲이 이뤄졌으나 주거지 3기가 파괴되지 않고 남아있어 앞으로 복원돼 공원으로 조성된다면 역사의 산 교육장으로 활용될 것으로 보인다. 자연지리적으로 볼 때 수지 2지구 유적은 한강의 지류인 탄천의 상류에 위치하는 것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탄천이 한강으로 흘러드는 지점의 동편인 송파구에는 석촌동 고분군, 풍납동토성 및 몽촌토성 등이 자리잡고 있어 수지 유적은 이같은 백제 유적 수계에 속하며 이 수계 내에서도 가장 원격지에 위치하고 있다. 아직 탄천의 하류 지역과 이 유적 사이에서 다른 백제 유적이 확인되지는 않았으나 지痔岵막?볼 때 차후 발견될 가능성은 충분히 있다고 학계에서는 보고 있다.
이와함께 탄천을 거슬러 남쪽으로 내려오는 길이 경기 남부를 비롯 충청권 이남으로 향하는 최단거리 교통로였음이 추정된다. 이 유적이 바로 그러한 루트에 인접해 있다는 사실도 지리적 측면에서 간과할 수 없는 중요한 사실이다. 또 이 유적과 현재까지 발견된 경기도 서남부 지역 백제 유적들의 분포 상태를 통해 당시 송파구에서 아산만 지역으로 연결되던 주요 교통로를 추정해 볼 수도 있다. 즉 수지 2지구 유적에서 서남방으로 가면서 수원 서둔동유적, 화성군 태안읍 기안리 고금산의 산상 주거지유적, 화성군 봉담면 마하리 백제 고분군이 위치하고 있고 더나가 아산만 가까이에서 평택군 포승면 현화리의 백제 유적이 알려져 있다. 이런 유적들은 43번 국도와 이에 연결되는 39번 국도의 주변에 위치하고 있어 이런 도로가 고대부터 아산만 방면으로 향하는 중요 교통로였을 가능성이 높다.
결국 수지 2지구 유적은 백제 유적이 남방으로 향하는 최단거리 교통로와 서남방의 아산만 방면으로 나가는 교통로의 분기점 근처에 소재하는 취락지라 할 수 있다. 이를 통해 백제의 취락 고고학 연구에 있어 거시적 수준의 추론이 가능해졌다.
이 유적지는 지형상의 입지가 다른 백제 주거지들과 다르다는 점도 특징이었다. 즉 이제까지 알려진 유적들은 큰 하천변이나 구릉위에 위치하고 있으나 이 유적은 선상지의 중앙부 가까이 있다는 점에서 차이를 보였다.
주거지들은 그 수가 적은데도 불구하고 5각형, 말각장방형, 말각방형 및 타원형 등 평면형태가 다양하고 내부구조도 상이한 양상을 보이는 점이 주목을 끌었다. 이곳에서 발견된 백제 토기는 장란형토기, 심발형 토기, 호 옹 등 실생활에 주로 쓰이는 기종을 중심으로 확인됐다. 미사리 유적 등 한강 유역의 생활유적 출토 토기와 기종 구성상 유사점이 많고 기형도 비교가 될만한 부분이 많아 수지 유적 역시 한강 유역의 백제토기와 지역적으로 연계성을 가지는 생활유적으로 판단됐다. 이들 토기들은 4세기 후반에서 5세기 전반경의 것으로 여겨지는 것으로 이 시기 토기 연구의 중요한 자료를 확보한 성과를 거뒀다. 그리고 이 발굴은 주거 유적에서 농공구, 병기 및 기타 잡기류 등 다종다량의 철기가 73점이나 출토돼 고대 철기 문화 연구의 중요한 자료로 평가됐다. 수지 유적지는 주거지, 토기 및 철기 등 여러 방면의 전기 백제 문화를 규명하는데 필요한 새로운 자료들을 제공한 유적지였다. 빠른 시일내에 남아있는 주거지가 복원돼 시민들의 살아있는 역사 교육의 장으로 활용돼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