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의회 및 자치단체장 선거가 달아오르는 무렵 양지면의 노인들과 담소하는 가운데 구한말, 초대 러시아 공사 이범진(李範晋)이 양지군 출신이라는 얘기를 들었다. 참으로 알다가도 모르는 얘기었으나 귀담아 두었다. 이범진(李範晋)의 얘기는 다음호로 미루고 이번호에는 이인극의 호적단자와 임명장에 대해 알아보자.
양지면 노인들의 안내로 이정표씨댁을 찾으니 참으로 반가히 맞아 주었다. 이씨는 호적단자와 임명장을 내보이며 말문을 열었다.
호적단자(戶籍單字:63.5×59)는 광서(光緖) 19년(고종 30년 1983)의 것으로 죽산 근삼면 안창리(竹山 近三面 安昌里) 제2통 제3호 (第二統 第三戶)의 유학 이양하(幼學 李良夏)가 작성하였으며 직계는 증조부(曾祖父)까지, 외가(外家) 및 처족(妻族)의 직계존속(直系尊屬)의 이름과 벼슬까지 적었으며, 갑자식상준(甲子式相準)이라하니 갑자년식 규격에 따라 기록한 것이다. 또한 행부사(行府使)란에 수결(手訣)로서 결재하여 인준까지 한 것이다.
임명장(28.5×36.5)은 의정부 찬정내부대신경혜민원총재 양지아문 총재관 이건하(議政府 贊政內部大臣兼惠民院總裁量地衙門總裁官 李乾夏)가 내린 제1호로서 “본월 7일에 전군수 이인긍(전군수 李寅兢)으로 용궁군수(龍宮郡守)를 서임하얏시니 자영월군(自寧越郡)으로 편도(便道) 부임(赴任)함이 위의사(爲宜事)”라하고 광무(光武)6년 3월 11일에 용궁군수 이인긍(龍宮郡守李寅兢) 좌하(座下)라고 하였으니 고종 31년(1894) 관제개혁 후 궁내부(宮內部) 의정부(議政府)이하 8아문(衙門)을 설치한 후의 새로운 체제의 서식(書式)이 아니런가!
또한 이인긍은 고종 21년(光緖10년:1884)에는 전환국위원(典 局委員)으로서 신식화폐주조(신식화폐주조)에 참여하여 일량은화(一兩銀貨:한량자리 은화)와 오문동전(五文銅錢) 주조에 참여하기도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