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 9일 실시된 용인시장 보궐선거가 끝났다. 30.8%라는 낮은 투표율이 말해주 듯 유권자의 무관심 속에 치루어진 9·9보선이 남긴 결과를 토대로 용인지역 정치지형의 변화, 그리고 2000년 제 16대 총선의 전개 방향을 전망해 본다. <편집자 주>
<용인지역 기존의 정치지형이 무너졌다.>
용인 지역은 지금까지 이웅희, 김정길, 김학규 3인으로 대표되는 정치세력이 합종연횡을 거듭하며 연합과 대결을 되풀이 해 왔다.
지난 6·4 지방 선거에서는 김정길, 김학규씨가 여권단일화에 실패함에 따라 이웅희씨의 강력한 후원을 받았던 윤병희씨가 선승할 수 있었다. 윤병희씨는 독자적인 정치세력을 형성했다기 보다는 이웅희의원의 후견을 받아 용인군수, 시장선거에서 연임에 성공한 인물. 그러나 경성비리사건에 연루되면서 사법처리되어 불명예스럽게 퇴진했다. 공석중이던 용인시장을 뽑는 9·9 보선과정에서 용인지역 정가는 큰 변화에 휩싸였다. 여권의 시장후보를 둘러싸고 김정길 김학규씨가 또 다시 팽팽하게 대립한 것. 두 사람은 6·4선거에 이어 이번에도 제 갈 길을 갔다. 김정길씨는 김학규씨?탈당으로 국민회의 공천에 한 발 다가섰으나, 끝내 예강환씨(당시 부시장)에게 공천을 뺏기고 정계은퇴를 선언했고, 김학규씨는 자민련 지구당위원장 직무대리에 재임명된지 이틀만인 지난 8월 4일 전격적으로 자민련을 탈당, 한나라당에 입당했다.
김학규씨의 한나라당 입당은 지역정가를 발칵 뒤집어 놓았다. 그의 한나라당 입당으로 9·9보선 결과는 한나라당의 승리가 예견되었다. 그러나 예측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 지구당위원장인 이웅희의원과 당직자들의 강력한 추천을 한나라당 중앙당이 거부한 것이다. 이유는 김학규씨의 잦은 당적 변경과 8월2일 자민련 지구당위원장 직무대리에 임명되고 8월 3일 김종필 총리 주최 오찬에까지 참석했던 김씨가 8월 4일 자민련 탈당, 한나라당에 입당한 것은 정치 도의상의 문제라는 문제제기가 있었고, 공천 결정권자인 이회창 종재는 이를 받아들였다.
따라서 한나라당 공천이 당연시되었던 김학규씨는 무소속 출마냐 공천결과 승복이냐 양자 택일의 외통수에 몰렸다. 중앙당의 결정에 반발, 이웅희의원이 한나라당을 탈당했고 김학규씨는 무소속 출마를 강행하였다.
지구당위원장과 조직의 강력한 추천을 등에 업고 지역기반까지 탄탄한 김학규씨를 꺽은 인물은 한나라당 상근 부대변인을 맞고 있는 구범회씨.
구범회씨는 언론인 출신으로 지역에서는 무명에 가까운 인물이었다. 구범회씨의 등장은 낙하산 논쟁을 불러 일으켰고, 지금껏 지역정치를 삼분해왔던 이웅희, 김정길, 김학규씨의 존재기반을 송두리째 뒤흔들었다. 이웅희의원은 탈당, 김정길씨는 정계은퇴, 김학규씨는 그토록 갈망했던 정당공천이 무산된 채 도 다시 무소속의 길로 들어서야만 했다.
<낮은 투표율, 그러나 변화의 단초를 연 9·9보선>
9·9보선 결과는 지역정가의 예측에 크게 빚나가지 않았다. 구범회 후보는 참신성과 타고난 언변으로 유권자의 기대를 모았으나 끝내 자금과 조직의 벽을 뛰어넘지 못했다. 당초 3인의 후보가 오차한계내의 근소한 접전을 벌일 것이라던 예상은 투표함이 열리면서 빗나갔다. 김학규씨는 자신의 텃밭인 기흥에서 몰표을 얻었고, 구범회씨의 득표는 저조했다. 반면 예강환씨는 여권후보 프리미엄에다 조직력의 우세로 기흥에서도 그런대로 득표했다.
그러나 수지읍의 투표함이 개함되면서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구범회씨의 몰표가 쏟아진 반면, 김학규씨의 표는 간혹 섞여 있다는 표현이 어울릴 만큼 극히 저조했다. 수지읍의 투표결과로 인해 개표초반 당선이 유력시되는 듯 했던 김학규씨의 패색이 짙어졌다. 예강환씨는 구범회 후보의 수지읍 선전에 힘입어(?) 1위를 탈환했고, 동부지역의 고른 지지를 받아 승리했다.
30.8%라는 낮은 투표율, 유력후보 3인의 각축으로 36.7%의 낮은 득표율의 당선자를 배출한 9·9보선결과는 유권자의 정치불신이 극에 달했음을 보여주었다. 동시에 조직도 자금도 없던 야당후보가 도시지역에서 전폭적인 지지를 이끌어냄으로써 변화를 바라는 유권자 의식의 일단이 극명하게 표출되었다.
이렇게 볼 때 9·9보선은 지역정가에 중대한 변화를 가져온 의미있는 선거였다 할 것이다. 시장에 당선된 예강환씨는 당장 63.3% 유권자가 야당과 무소속후보에게 투표했다는 시실이 중압감으로 작용할 것이다. 2천여 표차로 낙선한 김학규씨는 자신의 진로를 포함, 진지하게 투표결과를 분석해 보아야 할 것이다. 김학규씨의 당적 변경은 자신을 믿고 지지했던 자민련 당원조차도 납득시키지 못했고, 결국 명분을 잃은 무소속은 한계가 있을 수 밖에 없다는 사실을 확인하는데 그쳤다.
그러나 선거과정에서 김학규씨의 선대본부장 사퇴를 둘러싼 공작정치 논돛?비록 선거가 끝났지만 명명백백히 진실이 가려져야 할 것이다.
구범회씨의 경우는 비록 3위에 그쳤으나 변화를 바라는 유권자의식이 저변에 폭넓게 흐르고 있음을 확인시켜 주었다. 그러나 유권자가 제 아무리 변화를 바란다해도 최소한의 조직과 자금은 선거전에서, 특히 도농복합지역 선거구에서는 필수 조건이라는 것 또한 확인되었다. 어찌되었든 구범회씨의 선전은 조직과 돈만 있으면 당선될 수 있다는 구태의연한 선거풍토에 일침을 가했고 보다 중요한 것은 후보자의 상품성이라는 것을 확인시켜 주었다.
<2000년 제 16대 총선, 큰 변화 있을 것>
9·9보선 과정과 결과에서 나타났듯 2000년 4·13 총선은 새로운 인물들에 의해 주도될 가능성이 높아졌다. 그리고 여-야 맞대결구도를 기본축으로 선거전이 전개될 것으로 예상된다. 9·9보선에서 나타난 민심의 변화는 새천년의 시작년도라는 시대적 특수성과 맞물리면서 전혀 새로운 양상으로 표출될 것으로 보인다.
이렇게 볼 때 2000년 총선에서는 첫째, 민심의 변화를 정확히 포착, 진취적인 비전제시를 어떻게 할 것인가? 둘째, 비록 적지만 자신을 믿고 적극 지지하는 정예조직을 어떻게 꾸릴 것인가? 째, 가능한 최대 유권자와 접촉하는 역동적인 홍보전을 수행할 수 있을 것인가가 관건이 될 것이다. 그리고 지역정치인, 지방자치 지망생들 또한 이러한 민심의 변화에 역행해서는 2002년을 결코 기대할 수 없을 것임이 확실해졌다.
다시 말해 시대가 변한 것이다. 9·9보선은 그것을 보여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