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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처인성 복식 고증

용인신문 기자  1999.09.22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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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시대 몽고군과의 전투인 처인성 싸움을 승리로 이끈 김윤후 승장의 복식이 처음으로 고증, 제작돼 입체적 향토사 연구의 신호탄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이번 복식들은 용구문화제 일환으로 치러지는 처인성 승첩기념 행사의 가장행렬을 위해 제작된 것이지만 역사적인 복식 재현이라는 점에서 향토사적 의미와 함께 고려시대 복식사에서도 중요한 의미를 갖고 있다.
이번 고려시대 복식 제작은 한국복식학회 부회장을 역임하고 현재 복식학회 상임이사, 한복문화학회 회장으로 있는 명지대 조효순 교수의 고증 아래 8명의 팀원이 제작했다. 김윤후 승장복을 비롯 승려 및 수도승복 각각 한벌씩 모두 세벌의 승복이 재현됐으며 처인 부곡에 살던 천민들의 복식도 재현됐다.
그러나 복식 자료 부족으로 고증 과정에 어려움이 컸다.
보통 복식 고증은 그림이나 문헌의 기록을 비롯 무덤 부장품 등 유물을 중심으로 이뤄진다.
유물을 토대로 재현하는 것이 가장 사실에 근접하며 그림등은 그리는 사람에 의해 변형될 가능성이 있다. 삼국시대부터 고려시대에 이르는 복식 고증은 특히 어려운데 유물이며 그림 자료가 거의 전무한 실정이기 때문이다. 이에비해 조선시대 유물은 다량 발견돼 고증 재현이 수월한 편이다.
이번 고려시대 승복은 유물 및 불교 탱화를 토대로 고증됐다. 특히 불교국가였던 고려시대 탱화에는 모든 계급의 중생이 그려져 있어 고증에 큰 도움이 됐다.
김윤후 승장의 복식으로는 누비장삼과 무명 솜바지저고리, 털감투가 제작됐다. 누비장삼은 고려시대 보조국사 지눌의 장삼과 가사를 소장하고 있는 전라도 송광사를 찾아 고증했다. 그러나 김윤후에 대해 선승이라는 설만 있을 뿐 인적 사항이 제대로 연구되지 않아 정확한 복식 재현은 불가능했다. 다만 조효순 교수는 김윤후가 국사급이 아니기때문에 보조국사의 유물 유형을 참조만 했다고 말했다. 일반 승려는 손무명에 먹물을 들여 바지저고리를 제작했으며 가사 없이 무명 장삼에다 죽관을 만들었다.
수도승은 무명 누더기 동방과 바지저고리를 제작했다. 처인부곡민의 복식은 거의 문제 없이 제작됐다. 서민 복식은 고분 벽화 등에 나타나는 삼국시대 복식이 조선시대까지 끊질기게 원형이 유지되기 때문이다. 이번 복식에 드러난 고려시대 복식의 전체적인 특징은 여밈이 깊은 목판깃(각진 깃)에 직배래인점, 그리고 옆선도 직선인 점을 들 수 있다. 이번 복식 재현은 처음으?시도됐다는 중요성 외에 앞으로 인물사 연구가 더욱 깊게 연구돼야 한다는 과제를 남겼다.
또한 처인부곡민의 전체적이고 종합적인 인물, 풍속 등의 연구가 시도될 경우 보다 다양하고 풍부한 복식 재현이 가능할 것이라는 지적도 있었다. 조교수는 "처인 부곡에 천민 외에도 관리를 비롯 여러 계층의 사람들이 살았을 것"이라며 종합적인 문화사 연구가 시도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번 복식 재현은 명지대 생활과학부 복식문화연구실에서 한달여 동안 제작됐으며 참가한 사람은 조효순 교수를 비롯 대학원 의상학과 석박사 과정에 있는 이영미, 박영선(이상 박사과정), 이정인, 박창숙, 정희숙, 유효수, 배은석, 김태희(이상 석사과정)씨 등 8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