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미술관 김윤순관장의 세계 미술관 기행13- 천안문(天安門)과 고궁박물관(故宮博物館)-자금성(紫禁成)
혁명박물관, 역사박물관, 고궁박물관…역사를 고스란히
北京(북경)에서 나는 마치 학교 때 풀어야 할 많은 수학문제 풀이의 숙제를 해야하는 무거움을 느꼈다. 너무나 많은 것을 알아야하고, 다져진 것이 너무 없어 가벼운 마음이 아니다.
우선 천안문광장(天安門廣場)에 들어서면서 넓은 광장의 규모에 놀랐다. 무려 40만㎡의 면적과 50만명을 수용한다는 이곳은 1919년의 5.4운동, 1949년의 중화인민공화국 건국선언을 한곳이다. 또 우리에게 잘 알려진 1989년의 천안문 사건 등 뇌리를 스쳐간다.
천안문에 걸려있는 毛澤東(모택동)의 초상화를 얼마나 머리를 추켜들고 쳐다보았든지 한참동안 머리를 左, 右로 흔들어 보았다. 초상화의 크기에 놀라지 않을 수가 없다. 모택동 기념 탑은 그의 시신이 안치되어있는 곳이다. 그리고 혁명박물관(革命博物館), 역사박물관(歷史博物館)이 있으며 바로 옆에 중산공원(中山公園)이 있다.
중산(中山)이란 중국 혁명의 지도자이며 모든 중국인의 존경을 받고있는 손문(孫文)의 호이다.
손문(孫文)이 사망하자 그의 시신을 이곳에 안치했다가 지금은 南京(남경)의 中山陵(중산능)에 이장했다 한다.
孫文하면 우선 송문(宋文)의 세 딸이 생각난다. 송미령은 장계석의 부인(대만), 송경령은 손문(孫文)의 부인이다. 각각 유명한 남편을 따라 이념의 희생으로 서로 다른 길의 지도자가 된 20세기 불운의 자매이다. 일찍이 손문(孫文)은 삼민주의(三民主義)를 주장한 혁명의 아버지이다. 광동(廣東)에서 태어나 미국 하와이에서 유년기를 보내고 일찍이 서양문명을 접하면서 민주주의를 제창하여 중국혁명(1911)을 통해 임시 대통령에 취임했으나 추방당해 비밀 결사대를 조직하는등 혁명가로 북경(北京)에서 병사하고 말았다.
고궁박물관(古宮博物館)-紫禁成(자금성)은 중국최대의 박물관이다. 1417년 명(明)나라 영락제(永樂帝)가 남경(南京)에서 북경(北京)으로 도읍을 옮기고 그 후 490년 동안 14명의 황제와 청 나라 때 10명의 황제가 거처로 사용하였다. 자금(紫禁)의 紫는 "자미원(紫微垣)" 동양의 천문학에서 성좌의 세 구획중 하나인 북극의 소웅좌 부근에 있는 천제가 거처하는 곳으로 하늘의 지배자를 나타내는 중국식 별 자리에서 유래된 말이라 한다.
면적이 72만㎡ 세계에서 가장 큰 규모이며 동서 735m 남북960m나 되는 성벽 ??60개의 크고 작은 누각과 9천 개의 방이 있다. 이렇게 압도적인 위압감으로 방문객을 마지 한다. 재미있는 것은 후궁(後宮)들이 생활하던 장소는 아담하고 외소하다.
이렇게 양면을 보노라면 그 화려하면서도 소박함과 섬세함을 함께 함에 놀라지 않을 수 없다. 자금성만의 매력은 이것뿐이 아니다. 건물의 하나 하나의 특별한 건축양식이 감상의 대상인데...... 또 엄청난 귀중한 보물이 나를 압도한다. 섬세하고 아기자기한 작은 보석에서부터 다양한 조각품, 인위적인 괴석 등, 나를 지치게 한다.
중국의 마지막 황제 부의가 이곳에서 자랐고 세 살에 서태후(西太后)의 섭정에 의해 통치했던 가엾은 부의, 또 부의가 자전거를 타고 놀았다는 조용한 뒤뜰 등......
개방된 중국은 지금 각 국의 관광객으로 북세통을 이룬다. 마주치는 인파 속에 낮 익은 얼굴이 있다. 표정이 굳어 보이는 그 얼굴은 北쪽 사람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