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의 기사는 포은 선생 묘지명(墓地銘)에 있다. 이미 위화도에서 회군한 이성계의 군부세력에 의하여 고려의 국운이 풍전등화 같이 위태로운 때에 이르렀음에도 포은 선생은 절의를 지켜 고려를 지탱해 보려는 노력을 포기하지 않고 있었다.
더구나 천명과 민심의 향배가 되돌릴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이미 반혁명분자로 낙인찍힌 포은 선생의 생사는 경각에 있었다. 선생의 인물됨을 너무나 아끼던 산승 하나가 포은 선생의 마음을 돌려 보려는 뜻에서 이 한 수의 시를 지어 바친 것이었다.
“강남 만리 땅에 이미 들꽃이 만발하였는데 어디간들 봄바람에 좋은 산이 없겠는가?”라고한 것은 이미 대세가 돌이킬 수 없는 지경이 된 것을 들꽃에 비유하고 “좋은 산”이란 또 다른 왕조(朝鮮)를 의미한 것이었다.
이방원의 ‘하여가(何如歌)’에 비견되는 이 시를 보고 선생은 눈물을 흘리면서 감사함을 표했다. 그리고 이방원이 보낸 자객 조영규에게 4월 4일 선죽교에서 순절하자 고려의 국운도 함께 끝났다.
내년(2003년) 6월은 “포은의 달”로 예정되어 있다. 포은 선생의 후손과 종중에서는 모현면 능원리 묘소 입구에 있는 다리 지금의 ‘영모교’를 선생께서 순절하신 개성의 선죽교 모형으로 복원해줄 것을 용인시에 청원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어차피 포은 선생묘역 진입로의 확장공사 계획이 되어 있다니이런 기회에 선죽교 모형대로 이곳에 다리를 복원한다면 포은 선생께서 절의를 지켜 생을 마감한 역사물로서 또 하나의 명소가 될 수 있을 것임에 의심의 여지가 없을 것 같다. 비록 진품은 개성에 있을지라도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