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안은 중국의 최대의 박물관이다. 우선 서안(西安)은 은 산시성(陝西省)만 아니라 중국 전국에서 최대 규모를 자랑하는 역사 박물관, 그리고 진시황릉(秦始皇陵)에다 비림(碑林)박물관, 현종(玄宗)과 양귀비(楊貴妃)의 화청지(華淸池)에 병마용(病魔俑) 등 헤아릴 수가 없다.
서안의 첫날 벅찬 설레임을 주체 못한 채 40℃의 더운날 7대 불가사이의 하나라고 하는 진시황 병마용을 찾았다. 이곳은 진시황때 땅굴을 파서 지하제국을 건설, 수십년을 거쳤다고 추정하고 있다. 1974년 농부가 우연히 우물을 파다가 발견하여 발굴작업에 착수하여 1979년 처음 개관하였다. 병마용의 크기는 현대이노다 커 당시 인물의 신장이 큰 것이 짐작된다.
진시황릉의 서쪽에 자리한 청동 마차를 발견하였는데 2000년이 지난 지금도 부식되지 않아 당내에도 약물처리가 되어 보존시킨 것으로 보아 중국인의 지혜에 놀라움을 금할 수가 없다.
비석이 즐비한 비림박물관(碑林博物館)에서 삼국지에 등장하는 항우와 유방의 유명한 글귀를 탁본했다. 그리고 신, 구석기시대 모계사회의 생활주거양상n 도구들이 보존돼 있는 반파(半坡)유적 박물관을 방문했다.
서안하면 떠오르는 와청지(華淸池). 현종(玄宗 685-762)과 양귀비(楊貴妃 719-756)의 살던 곳을 찾았다. 당(唐)나라의 6대 황제 현종은 많은 업적을 접고 말년에 며느리인 양귀비에 눈이 멀어 26세의 양귀비와 61세의 현종의 로맨스는 결국 정치에서는 안사(安史)의 난을 초래하여 당나라는 쇠퇴의 길로 양귀브는 화청지에서 짧지만 사치하고 화려한 나날 뒤 안사의 난을 야기시켰다 하여 현종의 신하에게 죽움을 당했다.
중국의 4대미녀중 하나인 양귀비는 현종의 아들 부인이라 온천이 나오는 이곳은 원래 주(周)나라 때부터 역대 황제들이 보양지로 사용되었다. 747년에 현종은 궁전식 건물 화청궁(華淸宮)을 짓고 매년 가을에서 봄까지 이곳에서 보내면서 두 사람은 온천을 즐겼다 한다. 현종은 연화탕(蓮花湯), 양귀비는 해당탕(海棠湯) 하얀 옥석으로 용과 연꽃 모양의 대리석 욕조가 18개나 있어 놀랐다. 두사람의 침실은 비상전(飛霜展)인데 겨울에 눈이 와도 이곳만은 눈이 쌓이지 않았다 하여 지어진 이름이다.
비상전에서 남쪽에 구룡호(九龍湖)근처에 양귀비의 동상이 있다. 아방궁에다 화려한 그 날이 나에게는 역사의 아윷?灸?생각하게 했다.
중국 최대의 산시성 박물관은 산시성만 아니고 중국 전역에서 최대 규모를 자랑하는 역사 박물관이다.
산시성 지역의 출토품 200만점 이상 중에서 약 3000점이 전시되어 있다. 소장품 전체의 숫자는 약 11만 3천점이라니 놀랄 수 밖에 없다.
약 7만㎡의 부지의 면적에 중국의 전통 양식의 건물을 1991년 6월에 개관했다. 지붕은 유리가와를 사용했으며 당(唐)나라 때의 격조 높은 멋의 극치를 재현했다. 전시실은 지방 사실과 구석기 시대부터 아편전쟁까지 신석기 시대의 채도기와 서주(西周)시대의 동칼, 도자기 등 이밖에도 비림 박물관 그리고 실크로드의 시발지인 쓰처우즈루궁위안(絲綱之路公園)은 그 옛날 캐러밴들의 모습을 조각으로 설치되어 있다.
성벽에서 대경로(大慶路)를 따라 서쪽으로 가면 넓은 도로의 중앙 분리대에 석조 조각들이 즐비하다. 낙타를 탄 상인들의 모습은 각기 다른 민족의 얼굴들이여서 흥미롭다. 서양인의 얼굴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