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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빈낙도 선비정신의 교훈

용인신문 기자  2002.11.18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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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인영의 파적한담/백암면 옥산리 만절당(晩節堂) 선생

만절당 박원형은 조선전기의 명신으로 그의 묘소는 백암면 옥산리 하산마을에 전해온다. 본관은 죽산, 세종갑인년(1434)에 문과에 올라 좌익공신 연성부원군에 봉해졌고 병술년(1466)에 정승이 되어 영의정에 올랐다.
사체(事體)에 명달하고 전고(典故)에 밝았으며 특히 외교에 능하여 몸은 조선의 조정에 있었으나 이름은 중국에 널리 알려져 있었다고 한다.

장영이 중국 사신으로 왔을 때 접반 주선하고 교제하기를 알맞게 하매 장녕이 말하기를 "그대와 같은 재주는 춘추시대에 났더라도 숙향(叔向)과 자산(子産)의 밑에는 있지 않았을 것이다 라고 극찬한 것으로 미루어 보아 인품이 매우 뛰어났던 것으로 여겨진다. 또 진감이라는 중국사신은 돌아갈 때 박원형의 손을 잡고 눈물을 지으면서 "옛 사람은 천리 떨어진 곳에서도 신교(神交)한 일도 있는데 하물며 몇 달이나 상종하였음에랴"하고는 서로 더불어 시를 창수하여 즐기기를 옛친구와 같이 하였으므로 개인적인 우정뿐 아니라 국가간 외교도 돈독하게 전개되었다.
선생은 벼슬이 정승에 이르렀으나 극히 청렴하고 검소하므로 몸소 자제들을 법도있게 가르쳤다.
그의 아들 안성(安性)은 찬성의 직위에 있었는데 현달하기전 선생의 생일에 술상을 차려서 올리자 기쁘게 받아마시고 밤이 깊어지자 안성을 불러서 앞에 오게 하여 시 한절을 써 놓았다.

今夜燈前酒數巡 오늘밤 등불앞에 두어순배 술을 들고
汝年三十二靑春 너의 나이 헤어보니 서른 둘 청춘이라.
吾家舊物惟淸白 우리집 가보는 오직 청백 그뿐이니
好把相傳無限人 이걸 잘 지녀가서 무한이 전해다오

몇마디 안되는 짧막한 시한수로 자식을 교훈하고 경계하는 뜻이 있으니 가히 선비다운 몸가짐이라 할 수 있다.
대통령이 된 사람이나 대통령이 되고자 하는 사람들께서는 나라를 다스리기 이전에 먼저 자식들을 훈교하고 다스리는 첫 번째의 덕목을 청렴으로 하여 뭇 백성에게 모범을 보여주면 어찌 국민이 신뢰하고 따르지 않겠는가.
대쪽도 좋고 노벨평화상도 위대하지만 자식들이 부모님께 근심걱정을 끼쳐드리는 불효를 보면서 옛 사람들의 청빈낙도하는 선비 정신이 얼마나 위대한 교훈인가를 다시한번 우러르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