白頭山石磨刀盡 백두산 석 칼갈아 없애고
頭滿江水飮馬無 두만강 물 말먹여 없애리라
男兒二十未平國 남아 이십에 나라 평정치 못하면
後世唯稱大丈夫 후세에 누가 대장부라 이르리요
남이장군이 용인사람이라는 것은 읍지등에 기록되어 있다.
개국공신 남재의 손자이며 남휘의 아들인데 모친은 태종의 넷째 딸 정선공주이다. 28세때 병조판사에 올랐고 야인토벌에 용맹을 떨친 쾌남아였다.
그가 어렸을 때 외가집에 놀러가서 동리 아이들과 어울리고 있을 때 젊은 아낙이 보자기에 무엇인가를 싸서 머리에 이고 가는데 분바른 요귀 하나가 보따리 위에 올라 앉아 있는 것이 보였다.
다른 애들은 아무것도 안보인다고 하였지만 남이의 눈에는 분명히 요귀가 보였다. 기이하게 여긴 남이는 그 여자의 뒤를 따라갔더니 어느 대가집으로 들어갔다.
남의 집 내당까지 따라갈 수가 없어 밖에서 머뭇거리고 있을 때 갑자기 집안에서 곡소리가 들려왔다.
남이는 이소리를 듣자 “이크 분명히 그 요귀의 짓이로구나” 생각하고 사람을 불러냈다. 안에 무슨일이 있느냐고 묻자 방금 이댁 따님이 숨을 거뒀다는 것이다.
남이는 불문곡직 내당에 들어가보니 아까본 그 요귀가 아가씨의 목을 조르고 있었다. 남이는 “이 요망한 요귀야 그 손을 놓지 못할까?”하고 소리치자 요귀는 놀라서 달아나 버렸다.
그러자 죽었던 아가씨가 깨어났다. 이것이 인연이 되어 그 집 아가씨와 결혼하였다. 그의 장인은 세조 때 정승을 지낸 권람이다.
평소 남이의 재능과 명성과 벼슬이 자기 위에 있는 것을 시기해오던 유자광은 대궐에서 남이와 숙직을 하고 있었는데 때마침 나타난 혜성을 보고 남이는 무심결에 “혜성이 나타나는 것은 묵은 것을 제거하고 새로운 것을 포치하는 형상이다”라고 말한 것을 듣고 “남이가 반역을 꾀한다”고 무고하여 옥사가 일어났다
그리고 전에 지은 시 즉, 남아 20에 나라평정 못하면(未平國)이란 구절을 “나라얻지 못하면 (未得國)”이라고 둘러대어 화를 면키 어렵게 만들었으니 이때 그의 나이 28세였다.
남이는 임금이 친국한 자리에서 고문 끝에 다리가 부러졌다. 임금은 누가 너와 공모했는가? 그리고 물었다. 이때 영의정 강순이 옆에 있었는데 강순을 가르키며 “저기 있는 영상이 시켰습니다.”고 하였다.
이말을 듣고 임금은 강순도 국문케 하니 그의 나이 80이었다. 강순은 “남이야 네가 나에게 무슨 원한이 있어 나를 모함하느냐”고 묻자 남이는 껄껄웃으며 “원통한 것은 너와 내가 마찬가지다 너는 나의 원통한 것을 알면서도 간신배를 찾아 진실을 밝히지 않았으니 원통하게 죽는 것은 당연하다. 지금까지 자복하지 않은 것은 훗날 나라를 위해 더욱 일하려 한 때문이 있으나 이제 다리가 부러져 병신이 된 몸이니 살아 있은들 무엇하겠느냐, 그래서 저승가는 길동무나 삼으려고 끌어낸 것이다..하하하
아!! 영웅다운 기개가 넘치는 남이의 웅시는 결국 모함의 증거로 악용되어 그의 생명을 단축시키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