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션의 본고장하면 으레 프랑스나 이탈리아를 생각하게 한다. 그러나 질 샌더, 휴고 보스 등과 함께 독일을 대표하는 에스카다.
세계 패션 시장이 발렌티노, 이브생로랑, 샤넬, 아르마니 등에 의해 평정되었을 때 어느 누구도 생각지 않았던 도시 뮌헨에서 시작하여 오늘에 이른 에스까다. 비전을 전설로 바꿔놓은 그 스토리와 만난다.
에스카다는 76년 스웨덴 태생의 디자이너 마가리타 레이에 의해 태어나 니트웨어를 시작으로 회사가 탄생했다.
<파리나 밀라노가 아닌 뮌헨>
돈보다는 열정으로 일하던 1976년 볼프강과 유명 모델이였던 마가레타 레이는 자금 조달을 위해 무명의 컬렉션을 처음 선보였다. 그러나 당시 위험을 떠안으려는 은행은 거의 없었고 패션업계의 어느 누구도 다른 패션 컬렉션을 기대하지 않았다. 더구나 그것이 파리나 밀라노에서 만들어진 것이 아닌 뮌헨에서 만들어질 줄은 예상하지도 않았다.
레이 부부는 이러한 세계 패션 업계의 흐름을 받아들이기보다 자신들의 힘으로 자신만의 패션 회사를 설립하기로 더욱 굳게 마음먹었다. 그러나 이들의 도전에도 불구하고 중요한 국제 패션 전시회장에서 이들에게 작품을 전시할 공간을 허락하지 않았다. 볼프강 레이는 샘플을 직접 폭스바겐 버스에 싣고 온 유럽을 다니며 적당한 소매상을 구하고 새로운 고객 선을 구축했다. 이 당시 회사명이 지어졌다. 순수 아이리시 토종말(horse)로 볼프강 레이는 에스까다라는 말에 승리의 운을 걸고 회사명을 에스카다로 정했던 것이다.
이들은 고객을 위해 달린 만큼 승리했고 속도에 탄력을 받은 말은 가속하기 시작했다. 매출은 하늘을 치솟았고 다른 패션 관계자들은 뮌헨의 새로운 경쟁자에 놀라 넋을 놓고 있었다.
이렇듯 에스까다의 명성은 불과 30여년이 채 안되는 시간에 단단하게 세워졌다
<재단의 정확성이 곳 품질 보증서>
고품질의 니트 웨어를 주력상품으로 컬렉션을 시작한 초기부터 토털 룩을 강조한 현재의 컬렉션까지, 에스까다가 변함없이 지켜온 원칙, 하나!
‘어떠한 상황에서도 편안하게 정장을 한 느낌을 준다!’
에스까다는 최상품의 원단으로 섬세하고 편안함의 극치를 제공하기 위해 미세한 재단을 한 옷으로 유명하다.
에스카다 옷을 만드는 옷감과 실의 80% 이상이 오직 이 브랜드만을 위해 디자인되고 독점 생산된다는 사실이 그 좋은 예다.
특히 천연봉瑛?모와 실크 면 만을 주 소재로 쓰며 합성소재와 혼합할 경우라도 혼용률은 3~5%에 불과하다. 또한 완벽한 옷선을 나타내기 위해 가봉은 두 번, 세 번 고쳐졌고 이러한 재단의 정확성은 오늘날 에스까다의 품질 보증서와도 같다. 이런 고집과 신념으로 키워진 30년 명성의 에스까다는 독일에서 그 공로를 크게 인정받아 1999년 초에는 로만 헤어초크 대통령이 주는 “독일 연방공화국 1등 명예훈장(Officer"s Cross of the Order of Merit, 1st class)”을 받았다
<시대를 반발 앞서가는 감각>
우리나라에서는 미오의 여성 로비스트 린다김이 선글라스 에스까다 E-1005를 착용한 모습이 공개되자마자 그 제품이 품귀 현상이 빚어지는 사태(?)가 발생했었던 웃지 못할 헤프닝이 있었다.
선글라스와 화장품으로 더욱 유명해졌지만 이들이 추구하는 컬렉션은 다양하다.
에스카다 컬렉션은 고객층과 스타일에 따라 에스카다 마가리타 레이, 쿠튀르, 엘리먼츠, 스포츠, 디벨로프먼트(액세서리), 그리고 화장품 라인인 에스카다 보테 등으로 분류된다. 이중 화장품 라인은 독일 에스까다사와 국내 한불화장품의 합작투자로 99년 가을 첫선을 보였다.
시대를 반발 앞서가는 감각때문에 여성층을 매료시키기에 충분했고, 에스까다를 찾는 이도 많아졌다. 현재 세계 55개국에 총 350여개의 단독 매장과 200여개의 일반매장/코너를 운영하고 있다
활동적으로 보이지만 절대 가벼워 보이지는 않는 우아한 멋스러움이 크리스마스를 맞는 캐리어우먼을 흥분시킨다. 이런 에스까다의 힘은 언제나 시대의 흐름을 소홀히 여기지 않는 에스까다는 캐리어 우먼을 대상으로 제작하면서 일하기 편한 스타일이면서 여성스러움을 극대화시킨, 어찌보면 극과 극을 절묘하게 조화시킨 에스까다만의 비결이 숨어있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