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짝잃은 철새도 휴전선을 넘나들고 임진강 물고기도 남북을 오가는데 만물의 영장인 사람이 반세기가 넘도록 고향근처에는 가보지도 못한 채 가슴 속에서만 그려야 하다니…”. 매번 찾아오는 추석이고 명절이지만 올해도 이동식옹(70)은 평생동안 가슴 한켠에 납덩이보다 무겁게 자리잡고 있는 엉어리로 몸앓이를 한다.
함경남도 흥남이 고향인 이옹은 스무살먹던 해에 홀홀단신 월남한 전형적인 실향민이다. 북진한 국군이 중공군의 개입으로 후퇴를 거듭하던 1.4후퇴때 남하하던 군인과 난민들 틈바구니에 끼여 월남했다.
집이 부두에서 가까웠던 탓에 월남하려던 가족을 대신해 매일같이 부두로 나와 배를 기다리기를 반복하던 이옹. 그날도 떠나는 배가 없다는 말에 같이 나왔던 동생을 먼저 돌려보내고 혹시나 하는 생각에 조금 더 기다리다 부두에서 일할 사람을 먼저 태운다는 미군의 말만 듣고 혼자 서둘러 배를 타고 말았다. "그 때 조금만 여유를 가지고 행동했더라면 이렇게 혼자 평생 한을 간직하며 살지는 않았을 텐데…".
이옹의 한숨섞인 탄식에는 그 때의 아쉬움과 함께 가족에 대한 그리움이 가득하다. 월남당시 황해도 해주에 있던 한 의학전문학교 학생이던 그?월남 이후 남의 집 머슴살이까지 하는 고생 끝에 28세되던 해에 현 고려대 의대의 전신인 서울여자의과대학에서 의학공부를 마치고 의사가 됐다.
슬하에 2남을 두고 유복하게 살았지만 가슴한켠을 메우고 있는 것은 여전히 두고온 가족에 대한 그림움.
지난 7월에는 뒤늦게 알게된 이산가족의 생사확인과 상봉을 주선해준다는 한 사회단체에 가족의 행방을 찾아달라는 부탁도 해봤지만 아직 아무런 소식조차 듣지 못하고 있다. "미군의 포격으로 폐허로 변해버린 모습 외에는 고향에 대해 남아있는 기억조차 없는데도 지워지기는 커녕 50년이 지난 지금 더욱 가슴에 아른거린다"는 이옹. 두고온 가족과 산천이 못내 그리운 듯 20일 부인 지정수여사(64)와 함께 금강산여행을 떠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