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Z EZViwe

독립운동의 재정을 위한 살신성인

용인신문 기자  2003.01.13 00:00:00

기사프린트

1월의 독립운동가/ 김호(金乎) (1884.5.25~1968.1.5)

국가보훈처는 광복회, 독립기념관과 공동으로 국권회복과 조국독립운동을 위해 헌신하신 김호선생을 1월의 독립운동가로 선정했다. 선생은 1884년 5월에 서울에서 태어났다. 1912년 중국 상해로 망명하였고 1914년 유학을 목적으로 미국으로 건너간 뒤 노동에 종사하면서 대한인국민회에 독립자금을 의연하였고 1918년 4월에는 김원용 등 30여 명을 규합하여 북미지방총회 산하에 푸에블로지방회와 와이오밍지방회를 설립하고 서기와 총무로 활동했다.
1919년에 3·1운동이 발발하자 선생은 대한인국민회 중앙총회장 안창호로부터 중서부지역의 특파위원으로 임명되었다. 같은 해 12월에 선생은 샌프란시스코에서 이살음·이범영·이순기 등과 함께 파리에서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외교활동을 벌이던 조소앙을 후원하기 위해 노동사회개진당을 조직하고 신임장과 함께 2,500달러를 송금했다. 1931년 11월 대한인국민회의 승인으로 미주한인연합회를 조직하여 재무로 선임된 선생은 미주와 멕시코, 쿠바의 한인들에게 인구세를 모집하여 임시정부로 송금했다. 1937년 1월 대한인국민회 중앙집행위원장에 당선된 선생은 임시정부 중심의 통일전선을 구현한다는 평소의 신념에 따라 북미 한인사회를 중심으로 통합운동을 추진했다.
1941년 4월 하와이에서 해외한족대회가 개최되어 재미한족연합위원회가 조직되고 12월에 일본군이 하와이를 공격하자 선생은 집행부의 위원장으로서 로스앤젤레스에 한인국방경위대의 창설을 주도하고 임시정부의 승인을 받았다.
1945년 10월에 선생은 재미한족 국내파견 대표단의 일원으로 귀국하여 좌우합작위원회, 미소공동위원회 촉진에 협력하였다. 1946년 12월에는 남조선과도입법의원으로 피선되어 적산분과위원장으로 활약하다가 1949년에 도미했다. 1959년에 선생은 김원용과 함께 『재미한인오십년사』를 간행했는데, 이 책은 재미한인의 역사를 이해하는데 길잡이가 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