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인지역의 상례 역시 통과의례 중 전통적인 요소가 가장 많이 보존되어 있다. 큰 부락마다 상여를 보관하는 곳집(상여집)이 현존해 있고, 상여가 지금도 쓰여지고 있다. 일부 마을에선 선소리꾼과 각자의 역할을 정해 놓고 있다. 대부분의 마을에서 상가 집 일이라면 저마다 일손을 놓고 도와주고 있다. “초상나면 오줌, 인분도 치지 마라”, “바느질도 하지 말라” 등의 말은 상갓집 일을 돌보라는 말이다.
<상례의 기본 절차는 아직까지 전통 유교식>
용인지역에서의 상례 절차는 다소 차이가 있으나, 기본적인 절차는 전통 유교식의 상례를 따르고 있다. 전통 유교식 상례는 다음 19절차로 이루어진다.
초종(初終)·습(襲)·소렴(小殮)·대렴(大殮)·성복(成服)·조상(弔喪)·문상(問喪)·치장(治葬)·천구(遷柩)·발인(發靷)·급묘(及墓)·반곡(反哭)·우제(虞祭)·졸곡(卒哭)·부제(?祭)·소상(小祥)·대상(大祥)·담제(?祭)·길제(吉祭)
그러나 용인 지역도 다른 지역과 마찬가지로 실제의 관행에 있어서는 염습이라 하여 습·소렴·대렴을 흡수하고, 발인이 천구를, 우제가 반곡을 흡수하였으며, 부제· 담제· 길제가 사라졌다. 그래서 대체로 초종·염습·성복·조문·치장·발인·급묘·우제·졸곡·소상·대상 등 11개 절차로 행해지고 있다. 최근에는 소상 ·대상도 사라지고, 불교식의 49제나 100일제, 천주교·기독교의 상례 절차에 따라 더욱 간소화되는 추세이다.
<운명을 확인하기 위해 손과 발끝을 만져>
초종의(初終儀)는 임종(臨終)에 대한 준비, 초혼(招魂), 수시(收屍), 상례시 소임 분담, 관(棺) 준비, 부고(訃告) 등이 진행되는 과정을 말한다. 임종은 대부분 본인 거소에서 하였으나, 최근에는 병원에서 맞는 경우가 많다. 집에서 임종을 지키는 경우, 운명(殞命)한 것으로 인지되면 시신의 손과 발끝을 만져보거나, 등 밑으로 손을 넣어본다. 손발이 싸늘하게 식었거나, 손이 안 들어가면 운명한 것으로 판단한다. 운명하면 코가 삐뚤어지거나 턱이 빠진다고 한다 .명주솜을 코끝에 대어보고 호흡 여부를 확인하기도 한다.
<수세걷기를 마친 뒤에는 시신을 안치한다>
절명(絶命)이 확인되면 상주들은 곡을 한다. 그리고 가족이나 친척 가운데 염을 하는 사람이 수시(收屍)를 한다. 용인지역에서는 이것을 “수세(새) 걷는다”고 한다. 우선 시신을 칠성판이나 일반 널판 위에 눕히고 눈을 감긴다. (식금리?완장리에서는 칠성판 대신 수수깡을 깔았다.) 시신이 굳어지기 전에 팔을 바르게 펴고 양손을 가지런히 하여 배 위에 올린다. 엄지손가락을 ‘×자’(죽전리에서는 ‘∥’ 형태로 묶음)로 겹쳐서 붕대나 노끈 등으로 묶고, 다리를 펴서 발목을 묶어 시신이 뒤틀어지지 않도록 한다. 이 일이 끝나면 시신을 흰색 홑이불로 감거나 덮어서 안방 아랫목으로 옮겨 짚으로 만든 고임새에 얹는다. 고임새는 짚으로 세 마디씩 묶어 세 개를 만들어 상중하 부분에 놓는 것이다.(전지역) 수세걷기를 마친 뒤에는 시신을 안치한다. 시신은 머리 쪽을 상(上), 발 쪽을 하(下)라고 칭한다. 상은 동쪽으로 가게 하는 것이 일반적인데 용인지역에서는 약간 다르게 조사되었다. 대체로 동부지역에서는 시신은 상이 북쪽으로 가도록 놓는다. 서부지역에서는 상이 손 없는 곳으로 놓는다.
시신을 안치하고 나면 병풍을 치고 밥상에 술, 향로, 포, 촛대를 마련한 전(奠)을 차린다. 술을 한 잔 부어 놓고 향을 피우며, 곡을 하되 절은 하지 않는다. 원삼면 미평리에서는 곡도 안 한다. 기흥읍 서천리에서는 상제들이 도착하는 대로 절하고 곡을 한다. 이 때는 촛불을 켜지 않는다. 염습하기 전까지는 고인이 회생하기를 기다린다는 뜻에서 그렇게 한다고 한다.(전지역)(강남대 인문학부 교수, hongssk@kangnam.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