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자께서 가라사대 ‘인후’한 마을에서 사는 것이 아름다우니, 인후한 마을을 택하며 살지 않으면 어찌 그를 지혜롭게 하겠는가?(子曰 里仁爲美 擇不處仁 焉得知)라고 하신 말씀이 논어 리인(里仁)편에 있다.
그리고 다음구절을 보면 어진사람은 인(仁)을 편하게 여기고 지혜로운 사람은 인을 이롭게 여긴다.(不仁者 不可以久處約 不可以辰處樂 仁者安仁 知者利仁)라고 하였다.
처인(處仁)이란 용인의 옛 지명이 공자님 말씀에서 비롯되었는지의 여부에 관하여 명쾌한 결론을 내릴 수는 없겠으나 우연이든, 아니든 처인은 우리고장에서 꽤나 깊은 역사를 간직해온 지명이며, 살처(處) 어질인(仁) 두 글자의 어의(語意)도 공자님 말씀에 부합되고 있다는 점엣 고매한 도학적 분위기가 감지되는 명사로 연상된다. 그동안 우리는 생거진천(生居鎭川)에 반하여 사거용인(死居龍仁)이란 별로 상서롭지 못한 고장의 이미지만 희자되어 왔을뿐, “처인”이란 지명이 갖는 뉘앙스에는 별로 관심을 두지 않았던 것 같다.
처인이란 명사를 분석하자면 인자(仁者)와 지자(知者)가 인(仁)을 편한히 여기고 이롭게 여겨 살라는 뜻이 담겨 있으니 음미해 볼수록 마음에 와 닿는 것이다.
마침 계절의 여왕이라는 5월을 맞이하여 용인예총에서 제1회 “처인예술제”를 개최하였다. 그동안 예총산하 회원단체들이 산발적으로 주관하던 예술, 공연, 전시행사를 이 기간에 한데 묶어 종합예술제로 격상시켜 실시한 것으로 생각되는데 행사 내용도 보다 진전되어 가고 있다는 인상을 주기는 한다. 그러나 예술제의 타이틀을 왜 ‘처인’이라 했는가에 대한 사유가 설명되어 있지 않다는 것에 대하여 많은 시민들이 이를 궁금하게 생각하며, 필자 역시도 그렇다.
“사랑이 무어냐고 물으신다면 눈물의 씨앗이라고 말하겠어요”라는 유행가 가사가 있듯이 처인이 무어냐고 물었을 때 이데 대한 분명한 댓구(對句)가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말하자면 명분론이다. 처인예술제란 그럴싸한 명칭에는 그에 걸맞는 메시지가 담겨있어야 하고 시민 대중이 이를 흡수할 수 있는 이론이 뒷받침되어 있어야 한다고 여겨진다.
따라서 처인이란 타이틀의 성격을 규명하고 처인의 정신을 예술제로 승화시킬만한 사유와 명분에 관하여 별도의 설명이 없는 한 이 예술제는 그저 울리는 꽹과리처럼 소리만 요란할 뿐이고 그들만의 잔치로 그칠 수 밖에 없다.
“시민을 하나로, 예술을 생활로”라는 주관처의 옆寬퓽?도대체 처인의 본 뜻과 무슨 연관성이 있는 것인가? 상호 연관성이 결여되어 있다면 이런 축제에 시민의 공감이 뒷따르겠는가?
말로는 시민축제라고 하지만 실상은 예술단체의 축제이고 보여주기식 축제이자 봐주기를 강요당하는 축제만큼은 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이다.
더구나 봄에는 처인예술제, 가을에는 용구문화제로 분업화(?)되는 양상이 나타나므로 시민의 혈세가 한 지역에서 이중성을 띤 축제로 낭비될 수도 있다. 이에 대하여는 시 당국에서 조정역할이 필요하리라 생각한다. 처음 시작한 일이니 하기는 하되 명분을 분명히 하자
인후한 마을, 용인을 택하여 아름답게 사는 지혜를 예술의 경지로 이끌자는 것을 처인의 정신으로 하였다고 치고, 이에 코드가 맞추어 졌더라면 ‘처인예술제 ’란 명칭에는 험잡을 데가 없을 뻔 하였다. 처인이란 명사에 좋은 의미와 명분이 충분히 내재되어 있음에도 이를 적절히 살려내지 못했다는 아쉬운 점을 지적하고자 할 뿐, 이 글은 처인예술제 험집내기를 위해 쓴 것이 아니라는 점을 첨언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