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교회의 가장 대표적인 성인으로 추앙받는 성 안드레아 김대건 신부. 김대건 신부가 한국인 최초의 사제임을 모르는 이가 없다.
이런 김대건 신부가 어린시절을 머물고, 첫 사목활동을 한 곳인 용인 양지면은 전국의 천주교 신자들로부터 추앙을 받으며 순례의 발길이 끊임없이 이어지고 있다.
좀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양지면 남곡리에 있는 골배마실과 그곳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은이공소가 그곳이다. 이 두곳은 각각 김대건 신부가 어린 시절을 보낸 곳이고, 첫 사목지였던 곳으로 한국 천주교 사상 충청도의 솔뫼나 안성의 미리내 성지 만큼, 아니 오히려 그 이상가게 중요한 성지로 추앙받고 있다. 특히 은이공소는 한국교회사에 첫 본당으로 기록되고 있다.
안성 미리내로부터 산길로 30리인 이곳. 전국의 학생들은 매년 여름방학때마다 3000명이 넘게 안성 미리내 성지에서 이곳까지 도보로 성지순례를 하면서 김대건 신부가 남긴 한국 교회사의 발자취를 좇고 있다.
골배마실 성지는 소년 김대건이 자란 곳으로 성소의 꿈을 키우던 장소이나 현재 흔적이 없다. 다만 김대건 신부가 살던 집터만 양지리조트 한쪽에 보존돼 그의 석상과 제대, 초가집과 어머니 고씨의 모습을 새긴 부조만 남아있을 뿐이다.
골배마실은 김대건 신부가 7살 때 천주교 박해를 피해 그가 태어난 솔뫼에서 피난해 온 곳이다. 골배마실이라는 지명은 예부터 첩첩산중에 뱀과 전갈이 많이 나오는 곳이라서 뱀마을, 배마실이라고 부르던 동네에서 시작되는 산골짜기 안쪽 마을에서 유래한다.
옛날부터 신자들에 의해 구전으로 김대건 신부의 집터가 있는 장소로 알려져 왔던 이곳은 1961년 양지본당 5대 정원진 루가 신부에 의해 발굴되기 시작해 돌절구와 맷돌, 우물터, 구둘장 등 갖가지 생활도구가 발견되면서 성지 개발에 착수됐다.
김대건 신부의 본관은 김해이고 증조부는 김진후(비오, 1738-1814)이며, 조부는 김택현이다. 부친 김제준(이냐시오, 1796-1839)과 모친 고 우르술라의 장남으로 충청도 솔뫼에서 출생한
김대건 가문에서 처음 천주교 신앙을 받아들인 사람은 증조부 김진후다.
그는 1791년 신해박해때 체포돼 1801년 유배됐다가 1805년 다시 잡혀 충청도 해미에서 10년간의 옥중생활 중 1814년 순교했다. 김대건의 조부 김택현과 가족들은 1827년경 박해를 피해 솔뫼에서 용인으로 피신해 골배마실에 정착했다.
김대건 신부의 첫 사목활동은 골배마실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은이마을 은이공소를 중심으로 이뤄지게 된다.
조선 땅에서는 처음으로 신자들과 함께 미사를 봉헌했고, 바로 이곳이 체포되기 전 공식적으로 최후의 미사를 드렸던 곳이기도 하다. 한국 교회의 가장 대표적인 성인으로 추앙받는 김대건 신부가 성소의 씨앗을 뿌린 곳이자 그 열매가 가장 먼저 풍성하게 열렸던 은이마을, 은이공소.
은이는 숨겨진 마을이라는 뜻으로 박해시대때 숨어살던 천주교 신자들에 의해 이룩된 교우촌이다. 김대건 신부는 은이마을에서 1836년 모방 나 신부로부터 세례 성사와 첫 영성체를 받고 신학생으로 선발됐다.
마카오로 유학을 간 신학생 김대건은 아편 전쟁때 마닐라로 피했다가 또다시 중국 땅 요동에서 공부하고 한 때는 한만 국경을 전전하다가 서울로 돌아온 것이 9년만인 1845년이다.
그는 겨우 5개월 머문 후 상해로 갔다가 그해 8월 김가항 성당에서 페레올 주교로부터 사제로 서품된다. 같은해인 1845년 10월 해로를 택해 국내에 잠입했을 때 그는 비로서 자신이 어려서 자라던 골배마실을 찾아 어머니 고 우르술라와 감격의 재회를 한다.
귀국 후 첫 사목지를 은?마을로 정한 김대건 신부는 공소를 차려 용인 일대의 사목 활동을 했다.
이렇게 6개월간 사목활동을 하던 중 고 페레올 주교의 명으로 곧 조선에 입국할 매스뜨로 신부와 최양업 도마 부제의 입국로를 준비하던 김대건 신부는 뜻하지 않은 사건으로 순위도에서 포졸에게 1846년 체포돼 갖은 고초를 당한다. 해주 감영에 이어 포도청으로 이송된 김대건 신부는 40여차례 모진 심문을 당하게 되고 이시기 조정 대신들에게 서양 학문을 일깨워 주는 활동을 한다. 그해 9월 16일 사제 서품을 받은 지 1년만에 새남터에서 군문 효수형으로 순교를 당한다.
이로써 1814년 증조부 김진후로부터 시작돼 김대건 신부까지 30여년동안 김씨 일가는 4대가 순교를 당하면서 신앙의 명가가 됐다.
김대건 신부의 시신은 먹뱅이(용인 이동면 묵리)에 살던 이민식과 몇몇 교우들이 몰래 빼내 10월 26일 미리내에 안장했다. 그후 천주교에서는 유해를 모셔갔던 이송길을 따라 김대건 신부의 신앙 열정과 순교 정신을 본받기 위해 기도하며 순례를 하고 있다.
은이성지에서 미리내 성지까지 넘어야 할 세 고개를 신덕고개(어은이 고개, 용인 양지면), 망덕고개(해실이 고개, 용인 이동면), 애덕고개(오두재 고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