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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여 길로 되돌아오는 반혼(返魂)

용인신문 기자  2003.06.02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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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순석 교수의 우리고장 민속 이야기(34-마지막) - 상례 7; 우제(虞祭)

평토제가 끝나면 상주는 산소 한 바퀴 돈 후 사진과 혼백을 가지고 집으로 간다. 이를 반혼(返魂)이라 한다. 반혼할 때는 상여가 왔던 길로 돌아오는데 이는 혼(魂)이 집으로 찾아오지 못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함이다. 이때 혼백과 신주를 모신 사람이 맨 앞에 서고 상주들이 뒤따른다. 집에 돌아오면 바로 반혼제(返魂祭)를 지낸다. 이를 초우제(初虞祭)라고도 한다.
우제는 상중에 지내는 제사이기 때문에 ‘흉제(凶祭)’라고 한다. 우제는 초우제· 재우제· 삼우제를 지낸다. 초우제는 장례일 낮에 지내고, 재우제는 유일(柔日) 즉, 일진이 을정기신계(乙丁己辛癸)에, 삼우제는 강일(剛日) 즉 일진이 갑병무경임(甲丙戊庚壬)에 해당하는 날 지낸다. 지금은 보통 장례일, 2일날, 3일날 지내는 것으로 알고 지낸다.

초우제부터 삼헌을 하는 제사의 절차가 시작된다

예서에 의하면 초우제는 곡을 하면서 지내는데 처음으로 상주가 제주(祭主)가 되고, 제사의 절차에 따라 독축(讀祝)하고, 삼헌(三獻)한다. 이때부터 비로소 삼헌을 하는 제사의 절차가 나타난다.
초우제의 절차를 보면, 남자들은 마당에 서고, 여자??마루에 정렬하여 선다. 맏상주가 분향강신(焚香降神)하고 모두가 절을 하여 참신한다. 초헌관인 맏상주가 나와 초헌을 한다. 이때 삽시(揷匙)를 하고, 전저(奠箸)를 한다. 그리고 잔을 올릴 때는 누구든지 먼저 1배를 하고 잔을 올린다. 잔을 올리면 축문을 읽는다. 독축이 끝나면 초헌관이 재배하며, 일동 모두가 재배한다. 그리고 차자가 나와서 아언을 한다. 그리고, 갱(羹)을 숙냉(熟水)으로 바꾸고 밥을 풀어놓는다. 아헌관이 재배할 때 모두 재배한다. 아들이 모두 잔을 올린 다음에는 맏며느리, 딸, 손자, 사촌, 친척들 순으로 절을 하고 잔을 올린다. 이 일이 끝나면 합반개를 하고, 시저를 내린다. 그리고 나서 바로 그 자리에 앉아서 음복을 한다.
다음날이 되면 재우제(再虞祭), 3일째에 삼우제(三虞祭)를 지낸다. 삼우제 때에는 성묘를 하기 때문에 다른 우제때보다 일찍 서두른다. 삼우제를 지낸 후에 성묘를 간다. 산소에 도착하여 산소를 한바퀴 돈다. 그리고 간단한 제수(술, 과일, 포)를 차려놓고 절을 한다. 이 절차가 끝나면 산소 주변 적당한 곳에 구덩이를 파고 혼백을 묻는다.
졸곡제(卒哭祭)는 장례를 마치고 삼우제를 지낸 뒤에 무시애곡(無時哀哭)을 끝내기 위하여 지틈?제사이다. 예서에는 졸곡은 삼우제를 지낸 뒤 강일(剛日)에만 지내게 되어 있고, 그 시기는 초상으로부터 3개월이 지난 뒤에 지내도록 되어 있다. 지금은 초상으로부터 10일 내에 지내는 것이 통례이다. 용인시 지역에서는 대부분 삼우제 이튿날 지낸다. 졸곡제의 절차는 우제와 같다.

소상(小祥)은 1주기, 대상(大祥)은 2주기에 지내는 제사

전통적으로 소상은 1주기 때 지내는 제사이고, 대상은 2주기에 지내는 제사이다. 소상 때 탈상하지 않으며, 대상 때 한다. 집안의 아버지가 어머니보다 먼저 돌아가시면 3년 상을 하고, 어머니가 먼저 돌아가시면 1년 상을 한다고 한다.
소상은 주로 새벽에 지내는데, 전날 저녁에는 상식을 올린다. 이때 사위 등이 준비해온 음식이 있으면 별도로 올리고, 지역에 따라 제문을 읽는 경우도 있다.
대상 때까지는 굴건제복을 그대로 입고 제사를 지낸다. 대상 후에 산에 가서 성묘하고, 상장과 굴건제복을 태운다. 옛날에는 굴건제복을 집안에 대대로 보관하여 상례 때 꺼내어 쓰는가 하면, 생활이 어려운 집에서는 이를 얻어다가 상례 때 쓰거나, 뜯어서 보자기로 사용하기도 하였다. 보통 대상이 끝나면 상례가 끝나는 것으로 인식하였다. 따뉼?대상 후의 절차는 지켜도 되고, 지키지 않아도 되는 것으로 인식하고 있다. 대상 후에 담제를 지내면 완전히 탈상하는 것으로 일상 생활로 돌아온다.
요즘에는 신주를 모시지 않기 때문에 삼우제를 지내고 곧바로 탈상을 하는 경우도 있지만, 많은 마을에서 49제를 지내고, 100일이 되면 백일제를 지내고 탈상하는 경우가 많다. 어느 사람은 3년상을 치룬 적이 있다고 하나 극소수이다. 그리고, 1930년대 무렵부터는 탈상하기 전까지 상중(喪中)에는 모자와 상의에 베헝겊으로 만든 상장(喪章)을 달고 다녔으나, 1970년대 이후로는 점차 사라져서 지금은 찾아볼 수 없다. (홍순석/강남대 인문학부 교수, hongssk@kangnam.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