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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표랑 함께하는 향토문화재탐방

용인신문 기자  2003.06.09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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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표랑 함께하는 향토문화재탐방 1. 포은 정몽주선생 유적을 찾아서

“포은선생의 많은 업적을 알게 됐어요”

지금 용인은 포은문화제의 열기로 쌓여 있다. 올해 6월의 문화인물로 포은 정몽주선생이 선정되었다. 또한, 포은선생 탄신 666년이 되는 해이다. 이를 기념하기 위해서 오는 20일, 21일 이틀간 용인시에서는 포은문화제가 거국적으로 열린다. 그래서 우리 답사팀은 제일 먼저 그 현장을 답사하였다. 홍은표(용인초 2년), 정수환(용동중 1년), 정수연(서룡초 6년), 주아란(상갈초 6년), 주아영(상갈초 4년) 등 4명과 함께 6월 7일 오후에 모현면 능원리의 포은선생 묘역, 충렬서원, 포은영당, 포은선생 종가댁을 찾아갔다.

하마비와 단심가비

“자. 이제부터 답사하는 거야”. “여기가 포은선생님 묘소 입구지”, “저쪽으로 가보자. 음. 여기에 비석이 있는데, 이 작은 비석이 무슨 비석인지 아는 사람?” 처음이라서 모두들 긴장한 모습이었다. 머뭇거리다가 은표가 입을 열었다. “여기에 뭐라고 써 있잖아” “대소인하말?”(수연) “아냐, 대소인하?(아영) ”말마자야“(수환) ”맞다, 대소인하마(大小人下馬). 근데 이게 뭐야(아란)“ ” 하마비(下馬碑)라는 거야. 이곳에 포은선생의 묘소가 있기 때문에 세운 것인데, 이곳을 지나려면 누구든지 말에서 내려야 하거든, 그리고 걸어서 들어가야 하는거야. 서원 앞에도 이런 비석을 세우지“ 하마비 바로 옆에는 단심가비가 있었다. 아이들은 모두 반가운 눈빛이었다. 교과서에서 이미 단심가를 배웠기 때문이다. ” 이 시조 6학년 사회교재에 있어요“(아란) ”그래, 누가 한번 읽어보자“ 수환이가 읽었다.

이몸이 죽고 죽어 일백번 고쳐죽어 /
백골이 진토되어 넋이라도 있고 없고/
임향한 일편단심이야 가실줄이 있으랴

이어서 차를 타고 신도비 앞 주차장에 내렸다. 왼쪽 언덕에 높고 커다란 비각이 있다. 포은선생의 신도비각이다. 신도비(神道碑)는 묘소 바로 앞에 세우는 것이 아니라, 좀 떨어져서 귀신이 다니는 길목에 세운다고 한다. 그래서 신도비다. “신도비는 벼슬에 따라 크기가 다른가요”(수환) “아니야, 크기는 제한이 없고, 나라에 큰공을 세운 사람이 죽은 뒤에 업적을 널리 전하기 위해서 세우는 거지. 벼슬이 당상관이어야 한다는 제한이 있기는 하지만, 크기는 제한이 없어” “언니 무지 크다”(은표). 우측에는 이석형 선생의 신도비각이 있다. 아이들은 이제 비각을 알아보았?

영모재와 포은 정몽주선생 묘소 안내판

포은선생의 묘소 입구에는 영모재와 안내판이 있다. 아이들은 안내판 앞에 서서 그 내용을 각자 모두 읽었다.

「이곳은 고려말의 충신이며 동방 이학의 시조로 추앙되던 포은(圃隱) 정몽주(鄭夢周;1237-1392) 선생의 묘소이다. 선생의 자는 달가(達可), 호(號)는 포은, 시호는 문충(文忠)이며 본관은 영일(迎日)로 정관(鄭瓘)의 아들이다. 공민왕 9년(1360) 과거에 장원급제후 예문관검열, 예부정랑, 대사성, 문하찬성 등 여러 벼슬에 올랐다.
5부학당을 세워 후진을 양성했으며, 향교를 세워 유학(儒學)을 진흥하고 우리나라 성리학의 기초를 세웠으며 한편으로는 일본에 가서 왜구를 금지할 것을 교섭하는 등 외교활동도 하였다. 이성계(李成桂)의 세력이 날로 켜져 정도전(鄭道傳) 등이 그를 왕으로 추대하려 하자 끝까지 고려왕실을 지키려 하다가 선죽교(善竹橋)에서 피살되었다.
전설에 의하면 선생이 순절하신 뒤 풍덕군(豊德郡)에 묘를 썼다가 후에 고향인 경북 영천(永川)으로 천묘할 때 면례행렬이 수지읍 경계에 이르자 앞에 세웠던 명정(銘旌)이 바람에 날아가 이곳 현 묘소 위치에 떨어져 이곳에 안치했다고 한다. 후에 영의정에 증직되고 시호(諡號)가 내렸다.
나라를 향한 일편단심의 애국충절은 지금도 생생하며 오늘을 사는 우리의 산 교훈이 된다.」

안내판을 다 읽고 나서야 포은선생의 묘소가 용인에 있는 이유를 알게 되었다. 학교에서 책을 읽는 것보다도 사뭇 진지하여 내심 뿌듯했다. 그래, 이게 현장 학습이야. 우리의 이 답사가 앞으로 좋은 성과를 가져올 것을 확신하였다.

포은 정몽주선생의 묘소와 석상

포은선생의 묘소에는 벌써 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알고보니 풍수지리를 공부하는 이들이 일부러 형국을 살피기 위해 온 것이다. 아이들도 무슨 이야기인지 흥미롭게 지켜보았다. “이 묘소가 명당이래”(수연) “그래?”(수환) “앞이 훤히 보인다”(아란). 아이들을 양마석 앞쪽으로 모이게 하고 기념 사진을 찍었다. “이 동물이 무얼까?” “염소요”(아란, 아영,수연) “다 틀렸다. 양(羊)이야. 양” “십이지에 염소가 있냐?”(수환)석양(양마석)을 왜 묘소 앞에 세워 놓았을까? 그것이 가장 궁금했던 모양이다. 묘소 앞의 석상으로는 문인석, 장군석, 동자석, 양마석 등이 있다. 문신의 묘역에는 문인석을 세운다. 물론 무신에게는 장군석을 세운다. 용인지역에서 장군석이 세워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