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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경의용인이야기①

용인신문 기자  2003.06.23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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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다리고 사랑해야만 하는 용인

용인에서 지역신문 기자 생활을 한지 10여년이 흘렀다. 그것도 우물 안 개구리처럼 지금의 ‘용인신문’에서 한발작도 떠나지 못하고 있다.
몇 년 전 세상을 떠나신 아버지께서 “많은 고향 선후배들이 진을 치고 있는 용인에서 왜 하필이면 지역신문 기자를 자청하느냐”고 만류했던 기억이 난다. 그리고 몇 년 동안 아버지는 신문을 안보셨다. 세상사에 관심이 없었던 탓이었을까.
땅의 진실만 믿고 한 평생을 태어난 곳에서 붙박이로 살다 돌아가신 아버지. 그러나 세상을 떠나기 몇 년 전부터는 내 신문의 독자가 됐다. 용인 5일장에라도 다녀오실 때면, 가끔은 세상이야기 보따리를 잔뜩 짊어지고 와 풀어놓았다. 때론 너무 비판적이거나 풀어진 기사에 대해서는 우회적이지만 진심어린 우려를 아끼지 않았다. 그렇다고 정치나 사회를 논한 기억은 거의 없다.
90년대 들어 풀뿌리 민주주의의 상징인 지방자치제가 실시됐고, 용인은 대규모 택지개발과 함께 변화의 급류를 타기 시작했다. 그로부터 10년이 흘렀다. 용인처럼 지역언론 환경도 많이 변했다. 불현듯 나는 그 변화의 과정과 용인신문을 통해 바라본 ‘용인 이야기’를 쓰고 싶어졌? 잡문이 독자들의 눈에 거슬릴지 모르겠기에 우선 넓은 양해를 구한다.
‘용인 이야기’ 연재를 시작하며 가장 먼저 떠오른 사람이 나의 아버지다. 특별한 이유는 없다. 용인의 땅에 태어나 용인의 땅에 묻혔다는 평범한 인간의 상징성 때문인가 싶다. 또 한 사람은 작가 ‘박범신’ 선생이다. 굳이 내가 ‘용인이야기’를 쓰겠다는 이유도 10여 년간 용인과 인연을 맺었던 ‘박범신의 용인이야기’ 때문일 것이다. 게다가 그 용인이야기를 엮어 펴낸 산문집 ‘사람으로 아름답게 사는 일’(이룸)을 최근에 읽고, 용인이야기는 계속되어야 한다는 아쉬움과 미련이 생겼다. 아류적 편향성 때문인지도 모른다. 어쩌면 ‘용인이야기’를 빙장해 ‘사람으로 아름답게 사는 일’이 무엇인가를 독자들에게 묻기 위한 술수일수도 있다.
누구나 느끼는 용인의 대표적인 사회문제는 난개발 후유증으로 인한 반목현상이다. 10년 전부터 시작된 시청 앞의 농성은 아직도 끝날 조짐이 없다. 많은 사람들이 용인이 안정되기 위해서는 앞으로도 10년은 더 걸릴 것이라고 호언장담한다. 나 또한 동의한다. 어쩌면 10년을 훨씬 넘어갈지도 모른다. 아직도 개발이 되지 않은 용인 동부권에는 더 넓은 땅이 있고, 그 땅의 소유자들은 대부분 외지인이거나 개발이익을 위한 투기 목적으로 사들였음을 일찍이 간파했기 때문이다.
용인의 또 다른 현상은 이원화된 정서다. 한쪽은 난개발과 교통체증으로 못살겠다며 연일 아우성이고, 또 다른 한쪽에서는 각종 규제 때문에 개발을 못한다고 반발한다. 이는 정서의 괴리감을 반증하는 대목이다. 시의회 의원들을 출신지로 분류해보면, 극명하게 확인된다. 이들은 개발과 관련된 다양한 정책과 조례를 만들 때 미묘한 마찰을 일으킨다. 주민의 대표들이 양분될 수밖에 없는 지역별 환경을 들여다보면, 양측의 주장이 모두 설득력을 얻는다. 용인에서는 자고나면 푸른 농지와 임야가 없어지고 거대한 회색도시가 우후죽순처럼 생긴다. 수백만평에 달하는 택지개발지구는 속살을 드러낸 채 붉은 피를 흘리고 있다. 그러나 난개발 광풍에도 엄연하게 생존해 있는 너무나 아름다운 땅이 공존하는 곳.
분명한 것은 문명의 이기가 용인을 새롭게 탈바꿈시키고 있다는 것이다. 이로인해 용인의 정체성도 새로운 공사가 한창이다. 그 완성의 기다림이 산고의 시간처럼 힘들지만, 그래도 기다리고 사랑해야 만하는 용인. 이 땅을 사랑할 수밖에 없으니 아버지를 닮은 토박이의 태생적 한계일까. 아니면 못난 자존심이 만들어낸 자위일까. <본지 편집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