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 22일 오전 10시, 은표, 김면승(선화여중 2년), 김동수(용인초 6년)와 함께 미평리 약사여래입상을 찾아갔다. 이번 탐방은 아이들끼리 녹음기와 메모장을 들고 미평리 주민을 찾아가서 약사여래에 대해서 조사하고, 채록하는 일에 중점을 두었다.
용인에서 가장 큰 미륵부처님을 만나다.
은표팀이 탐방하려는 약사여래입상은 원삼면 미평리 66-4번지에 있었다. 마을 한 가운데 있어서 주민에게 물어보면 쉽게 찾을 수 있다. 이 문화재는 경기도 문화재자료 44호로 지정되었다. 아이들은 인터넷 자료실에서 사진을 보았지만, 실제 미륵불을 보고서는 다소 놀랬다. 모두들 신기하게 느꼈다. 우선, 은표가 안내문을 크게 읽었다.
「이 불상은 화강암으로 조성된 여래입상으로 병의 치유를 기원하면서 약을 주는 의왕불(醫王佛)로 불린다. 또 미륵부처가 서 있는 마을이라하여 이 마을을 ‘미륵뜰’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석불 앞에는 자연석으로 된 불단이 있고, 불상의 주변에 돌기둥이 있는 점으로 미루어 본래는 불당이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불상의 높이가 4.3m나 되는데 묻혀 있는 발목 이하 대좌까지 계산한다면 용인지역에서 가장 거대한 석불이라고 할 수 있다. 석불은 하나의 돌로 만들어졌는데, 머리 위에는 자연석의 보개(寶蓋)가 다른 돌로 만들어져 놓여 있다. 얼굴은 신체에 비해서 큼직한 편으로 민머리(素髮)에는 지혜를 상징하는 상투모양의 육계(肉?)가 있고, 이마의 중앙에는 백호(白毫)가 표현되었다. 눈꼬리가 길게 표현된 초승달형의 눈, 오똑한 코, 입 등이 묘사되었다. 두 귀는 짧게 표현되었는데, 목에는 번뇌 업(業) 고통을 상징하는 삼도(三道)가 돌려져 있다 옷(法衣)은 양쪽 어깨를 덮은 통견(通肩)으로 넓은 U자형의 옷주름이 흘러내리고 있다. 두 손은 가슴 앞에 두었으며, 왼손에는 깨끗한 물이나 감로수를 담는 정병을 들고 있다. 민머리 위에 넓적한 보개(寶蓋)를 얹는 불상 양식은 고려시대 이래의 지방 석불양식으로 긴 눈, 주먹코, 길게 다문 입, 달라붙은 큼직한 귀, 체격에 비해 빈약하게 처리된 팔과 손 등의 표현에서 지방의 토속적인 특징이 잘 나타난다.」
주변에는 높이 80cm-100㎝에 이르는 석주(石柱) 6개가 있고, 토축이 있는 것으로 보아 불당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동남쪽을 향하고 있는데, 미륵불 앞이 막히면 동리에 흉사가 들고 화재 생긴다는 전설이 있다. 지금도 불상 전면에는 일체의 건물을 짓지 못한다고 한다.
지금도 미평리 주민들은 미륵부처님께 치성을 드린다.
아이들은 각자 질문 내용을 메모장에 적고, 제보자를 찾아 나섰다. 때마침 바로 옆집에 사시는 김삼룡(76세) 할아버지를 만나 뵈었다. 할아버지는 17세 때 이사와서 60년간 옆에서 살고 계신다. “할아버지 안녕하세요”(은표, 면승, 동수) “ 이 미륵불 앞에 집을 지으면 재앙이 생긴다는데요?”(면승) “ 지금 네 귀퉁이에 돌로 세운 기둥이 있지. 여기에 옛날에는 기와지붕을 해 놓았는데, 그런데 기와집을 올려놓기만 하면 날라 가버렸어. 그래서 지금은 그냥 놔두는거야” “오른쪽 귀가 떨어진 부분은 6.25때 인민군이 총질을 해서 그래" “이 부처님은 병을 고쳐준다는데요?”(은표) “ 그건 잘모르겠고, 여하튼 효험이 있대. 그래서 정성을 해마다 드리지. 마을 사람들이나 맹골절에서 와서”
김씨할아버지 댁에서는 정초에 고사떡을 차려 놓고 치성을 드린다. 거의 50년간 치성을 드려 오는데 제사단에는 시루떡, 쌀, 초, 정화수를 마련하고 할머니가 가정의 평안과 무병을 빈다. 그래서 그런지 별반 탈없이 잘 지내고 있다고 믿는다.
“3년 전에 ‘미평리’라고 동리 입구에 비석을 세워 놓았는데, ‘미륵뜰’이라고 했어야 했어”“이 미륵불 때문에 마을이 생긴건대. 미평리는 잘 못 된거야. 왜정 때 그렇게 한 것인데.”
할아버지는 아이들을 미륵불 앞으로 이끌고 가서 설명해주셨다. “이 미륵불 앞에 발이 있어요, 그런데 주로 이 발을 안보고 가는 사람들이 많아. 어떤 사람은 발로 문지르고 가는데 이건 잘못하는 거여”. 할아버지가 일부러 말씀해주시지 않으면 아이들도 보지 못했을 것이다.
“ 이 뒤에 있는 돌은 뭐예요?”(면승) “앞에서 제사 지낸 다음에 뒤에 있는 돌에다 떡을 떼어놓고 가기도 하지”
할아버지는 마을에 회식이 있어서 그곳으로 가시고, 우리들끼리 다시 미륵불에 대해서 이야기하였다. “백호가 뭐야? 호랑이?”(은표). “부처님들은 이마 가운데 백호가 있어. ‘흰백(白)’에다 ‘터럭호(毫)’ 그러니까 ‘흰털’이란 뜻이야. 이마 가운데 흰털이 뭉쳐 있는데, 그것이 백호야. 지금은 보석 같은 걸로 만들어서 가운데에 붙이지” “왜 약사여래라고 했어요?”(동수) “ 자! 이 부처님을 자세히 보자. 왼손에 들고 있는 것이 뭐지?” “술병”(은표) “술병? 부처님이 술 마시냐. 약병이야. 사람의 병을 치료해주는 약이 들어 있는 정병이야. 그래서 약사여래지” “여래는 부처님이라는 뜻이야. 석가여래도 있지?” “ 서서 있기 때문에 입상(立像)이야. 앉아 있으면 좌상(坐像)이라고 하지. 약사여래는 병을 고쳐주는 부처님이란 뜻이야”. “이 부처님처럼 오른손의 모습을 한 번 해봐. 엄지 검지 손을 이렇게 잡고 있지. 이런 것을 수인(手印)이라고 하는 거야”.
돌장승과 미륵불은 어떻게 달라요
“돌박물관에 가면 이런 것들이 많은데 전부 같은가요?”(동수) “아! 이런 걸 알아야겠다. 돌로 만든 장승(벅수)과 미륵불의 차이는 어디에 있을까? 각자 말해보기” “모자?”(은표) “장승엔 모자가 없어?”. “옷을 입었다”(동수). “약병”(면승). “귀가 크다”(동수). “백호”(은표). “ 그런 것들 보다 더욱 중요한 것이 있어. 뭐가 있을까. 안내문에 답이 있어. 부처님 목에는 ‘삼도(三道)’가 있어. 이것이 가장 큰 차이야. 삼도가 있으면, 부처님이야. 삼도는 무엇을 번뇌?업?고통을 상징하지”
이번 탐방을 마무리하기 위해 아이들에게 질문을 했다. “미평리 약사여래입상을 직접 보고 느낀 점은?” “약사여래가 뭔지 몰랐는데 병을 치료해주는 미륵불이란 걸 알았어빨?면승), “약병을 들고 있고, 용인에서 가장 큰 미륵부처”(은표) “할아버지가 가르쳐주신 사실인데요, 미륵불에서 발등까지 만들어진 것은 보지 못했어요”“맞아. 이곳에 와서 약사여래불의 발을 못보고 가면 정확하게 보지 못한 거야” “우리가 할아버지한테 여쭤보지 못한 것이 있다. 뭘까?” “ 언제 만들어졌을까?” “이 부처님은 고려 중엽에 만들어졌어. 민중부처님이고. ‘태조 왕건’이라는 드라마 보았지. 궁예가 자신을 미륵불이라고 했잖아. 미륵신앙은 고려시대 널리 퍼진 민간신앙이야. 그러니까 고려시대 이후 만들어졌다고 볼 수 있지”.
“아빠! 여기다 총을 쏜 사람은 정말 나쁘다. 그래도 귀만 부서진 것은 다행이야. 정말 다 부서졌으면 어떻게 해”(은표). 그 말이 새삼 절실하게 느껴졌다. 6.25가 가까운 때문일까.
* 은표랑 함께하는 향토문화재탐방팀을 모집합니다. 초등 4년 이상에서 중등부 학생 2-3명으로 제한하며, 가족이 함께 해도 좋습니다. 매월 첫째 토요일, 셋째 일요일에 용인신문사앞에서 오전 9시에 떠납니다. 용인신문사 편집부(편집부장 서정표)로 접수하세요. 문의는 홍순석교수님(hongssk@kangnam.ac.kr)에게 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