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에 있는 오르세미술관은 역사[驛舍]를 개조한 미술관이다. 이것만으로도 여행객의 호기심을 자극하기엔 충분하다. 그러나 이 미술관에 대한 나의 관심은 각별하다. 그것은 19세기 인상파 미술의 진수가 아주 천천히 낯익은 그림들을 감상 할 수가 있다. 길이 140m. 넓이 40m. 높이 32m. 연면적5.000m의 유리창으로 둘러 쌓인 웅장한 모습의 미술관은 건축과 미술품의 두가지 측면에서 반전의 역사를 담고 있다. 첫번째 아이러니는 1900년 최초의 오르세 역 설계자 빅토리 라루가 그의 동료화가 에르아르 드타유에게 던진 농담에서 비롯된다.
“오르세 역은 눈부신 역작으로 마치 미술학교처럼 보인다. 그런데 반대로 미술학교는 역처럼 보이기 때문에 나에게 시각적 여유가 있다면 역과 미술학교 건물을 서로 바꿨으면 좋겠다.” 그로부터 86년이 지난 오늘 그의 농담이 실현 된 것은 참으로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오르세는 이제 역이 아니다 하루에 2만명의 관람객이 드나드는 인기 있는 미술관 중의 하나이다.
우리는 여기서 프랑스 사람들의 전통을 계승하고 그 위에 창조를 더하는 능력에 찬사를 보낸다.
또 하나의 아이러니는 ‘라벨 에포크’[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의 평화로운 시대]의 재조명을 통해 당시 평론가들로 부터 엄청난 비난과 혹평을 받았던 19세기 인상파 회화 및 조각들이 오늘날에 와서 극찬의 대상으로 반전의 역사를 경험하는 일이다.
전에는 승객들이 오고 가던 드벨사스 거리를 지나 정거장에 들어서면 곳곳에서 19세기의 학구적 예술에 대한 고답적 취향과 당대 예술 천재들의 믿기 어려운 대담성 간의 갈등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라벨 에포크의 모순이 현실로 다가 오는 것이다.
특히 중앙 홀 끝에는 당시 ‘구역질 나는 난장판’ ‘공중 도덕에 대한 모독’ 등 호된 비판을 받았던 장 밥티스트 카르포의 유명한 조각 [춤]이 당당히 자리잡고 있다, 이 작품은 18톤이나 되는 대리석으로 되어 있으면서도 놀라우리만큼 우아하고 경쾌한 느낌을 준다.
로뎅의 [발작크상] 역시 이와 유사한 시련을 겪은 작품이다. 그리고 회화 분야에서 마네의 [올랭피아]도 ‘극도로 타락한 예술’ ‘외설스런 그림’이라는 당대의 혹평을 견뎌낸 후 에밀 졸라에 의해서 고전적 전통미를 완성시킨 수작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이 밖에도 중앙 홀 1.2.3.층 전시실에는 19세기 인상파. 후기인상파. 신인상파
작가瓚?작품이있다. 또 마욜의 조각[지중해]. 고호의 [아르르의 무도장] 마네의 [풀밭 위의 정심] 드가의 [오페라 극장의 무도장〕등 헤아릴 수 없는역작들이 오르세를 가득 메우고 있다.
오르세미술관의 중요성은 1986년 프랑스와 미테랑 대통령의 오르세 개관 연설에서 잘 나타난다.
‘“루부르 박물관과 퐁피두 센터 사이의 연결 고리가 하나 빠져 있었는데 마침내 그 고리가 채워진 것이다.”
유리 돔을 통해 한 세기를 떠들썩하게 했던 인상파 화가들의 영감의 장소를 짚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