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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스러웠던 시절의 씻김굿

용인신문 기자  2003.07.14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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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영애와 트로트의 만남

<화제의 음반 / 한영애 BEHIND TIME1925~1955 a memory left at an alley / 2003년 7월 7일발매>

랩과 댄스와 발라드만이 목청을 높이는 이 시대, 느닷없이 한영애가 흘러간 뽕짝을 들고 나왔다. 그녀가 이번 앨범 ‘비하인드 타임’에서 강조한 핵심요소는 ‘절실함’이다. 단순한 형식의 뽕짝은 세련미와는 거리가 멀다. 그러나 인생의 절실함을 담아내는 깊은 맛은 악곡형식의 약점을 오히려 장점으로 만든다. 요즘 노래들이 쉽게 흉내낼 수 없는 진실이 들어가게 된다. 그녀가 들려주는 일제시대로부터 1950년대까지의 향수어린 노래는 그녀만의 목소리와 결합 절실함으로 우리에게 다가온다.
그녀의 노래에는 독특한 힘이 있다. 선사시대 어느 여사제의 주문과도 같이, 지친 영혼을 위무하는 그런 힘이다. 한국인이 아니고서는 갖기도, 이해하기도 힘든 그런 한스러운 정서를, 그녀는 노래로 불러내고 다시 노래로 위로한다. 그것이 어떤 음악과 만나건 그녀의 노래가 가장 한국적이면서, 또한 가장 세계적이 되는 이유이다. 그녀는 대한민국의 눈물 많은 역사에서도 가장 한스러웠던 그 시절의 노래를 부름으로써, 그녀는 한판 씻김굿을 펼치려 하는지도 0른다.
윤심덕의 드라마틱한 삶으로 더욱 유명한 ‘사의 찬미’, 일제시대의 대표적인 곡 ‘강남달’로부터 시작해서, ‘황성옛터’, ‘굳세어라 금순아’, ‘목포의 눈물’ 등 한국인에게는 너무도 익숙한 음악들과 함께, 이 음반을 통해 처음 2절까지 완벽하게 녹음된 ‘부용산’, 지금도 애창되는 정감 어린 동요인 ‘따오기’ 등 1925년부터 1953년까지의 다채로운 노래들이 선곡에 포함되었다. 특히 복각음반을 통해 재발굴한 ‘꽃을잡고’는 원곡이 가진 아방가르드한 매력을 그대로 잘 살려 독특한 아우라를 뿜어낸다.
흥겨운 스카 리듬을 도입한 ‘선창’이 귀에 쉽게 들어오며, ‘오동나무’에는 버블 시스터즈, ‘강남달’에는 어어부프로젝트의 백진이 각각 featuring 하여 앨범을 더욱 풍성하게 만들고 있다. 과감하게새로운 해석을 도입한 다른 곡들과는 달리 ‘목포의 눈물’과 ‘타향살이’는 원곡 그대로의 접근방식을 택하고 있는 것이 오히려 신선하게 느껴진다.
앨범의 하일라이트는 ‘애수의 소야곡’과 ‘외로운 가로등’이다. 너무나 잘 알려진 오래된 멜로디를 모던한 감각으로 풀어낸 ‘애수의 소야곡’은 원곡과는 달리 철학적이고 사색적인 느낌을 준다. ‘외로운 가로立??블루지한 기타와 재즈의 느낌을 주는 클라리넷, 그리고 잘 정돈된 스트링 어레인지가 어우러져 이색적인 앙상블을 이루고 있다. 앨범의 백미라 할 수 있는 이 두 곡에서 한영애의 목소리가 가진 매력의 정수를 느낄 수 있다.
별로 절실한 게 없어 보이는 이 시대에, 한영애는 청승맞으리만치 절실한 무엇을 찾고 있는 옛 노래들을 되살려냈다. 그 의도된 시대착오는 경박한 현 세태에 대한 역설적 항의로도 들린다. 한영애의 노래를 따라 청승을 떨며 ‘목포의 눈물’과 ‘사의 찬미’를 불러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