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 6일 오전 10시, 은표, 이아람(왕산초 2년), 이준영,김정훈, 차대환(모현중 1년)이 모현면 완산리 지석묘를 찾아갔다. 이번 탐방은 현지 주변에 사는 아이들이 자기 고장의 문화재에 대해 얼마나 관심을 가지고 있을까? 에 중점을 두었다.
용인에서 가장 큰 지석묘를 찾아가다.
이번에 은표팀이 탐방한 모현 지석묘는 왕산리 498번지 외대입구 우측 편에 있다. 이젠 빌라 건축에 둘러 쌓여 있어 밖에서는 보이지 않는다. 주변은 빌라 가운데 있는 소공원이 되었으며, 지석묘는 철책선 안에 갇혀 있다. 그렇게 해서라도 귀중한 문화유산을 보존하려는 행정당국의 의지가 고마울 수밖에 없다. 휴일이라서 여러 사람들이 놀러 나와 있지만, 지석묘에 대해선 별 관심이 없다. 같이 동행한 아이들도 항상 거기서 놀았다고 한다. 그들도 지석묘가 추장의 무덤이었다는 정도만 알고 있었다. 이밖에 무엇을 더 조사하는지조차 의문이 된다는 눈치다. 은표가 아이들의 인적사항을 물어서 적고, 이번 답사의 목적을 설명하였다. 미리 준비한대로 “지석묘의 세부적인 지식도 중요하지만, 이곳에 살고 있다는 것을 자랑스럽게 여겨야 한다” 점을 말했다. 모현지석묘는 경기도 기념물 제22호로 지정되었다. 안내문에는 지석묘가 청동기시대의 대표적인 무덤으로, 탁자식과 바둑판식, 개석식으로 구분된다고 하였다. 지석묘는 현재 우리나라 전역에 3만기 정도가 남아 있다. 모현지석묘는 탁자식이며, 본래 3기인데, 지금은 2기만 있다. 아이들과 함께 지석묘를 세밀하게 관찰하였다. 문이 없어서 철책을 넘어 들어갈 수밖에 없었다. 큰 것은 완벽한 형태로 보존되었으며, 길이가 5.5m이고 두께가 1m쯤 된다. 굄돌은 높이가 덮개석에 비해 왜소하다. 높이가 0.8m밖에 되지 않는다. 굄돌은 양쪽과 동쪽 부분에 놓여져 있다. 서쪽이 입구로 터진 상태이다. 작은 것은 길이가 4.4이다. 굄돌이 쓰러져 한쪽으로 무너져 있다.
고인돌 안에 들어가서 벽화를 찾으려 하다.
아이들을 고인돌 안에 들어가게 하였다. 겉에서 보기엔 그냥 동굴처럼 보이지만, 내부에 들어가면 아늑한 보금자리처럼 느껴지기 때문이다. “혹시 고분 벽화 같은 것이 있나 찾아봐. 천장과 양쪽 굄돌을 자세히 살피면 있을꺼야” 아이들은 그 말을 믿고 열심히 찾았다. 천장에는 그을음 흔적이 있다. 언젠가 노숙자들이 이곳에서 거처를 마련하고 살았던 흔적이다. 아이들은 그을음도 손으로 문질러가면서 있지도 않는 벽화를 찾으려 하였다. 기왕 들어간 김에 기념사진을 찍었다. 그래야 속았다는 섭섭함도 달랠 수 있을 것같고 해서. “아빠 아무런 그림도 없어”(은표) “정말 벽화가 있었어요?”(준영) “고인돌은 언제 때 무덤이라고 했냐?” “청동기 시대요”(정훈) “청동기 시대 때 벽화가 있었을까?” “울산 반구대지역에 암각화가 있지? 고래사냥 모습도 새겨져 있는. 이 암각화도 청동기 시대 유적이지. 여기에는 150여점의 그림이 새겨 있어서 보물로 지정된 거지. 그리고, 양평군 지적묘에서는 덮개석을 받친 돌에서 어선각화가 발견되었어. 용인시 원삼면 맹리 지적묘에는 성혈(性血)이 새겨 있는데, 이것도 암각화의 일종이야.” “모현 지석묘에도 암각화가 있었으면 좋겠다”(은표) “그렇다면 보물이야. 그렇죠”(정훈)
퀴즈게임으로 모현 지석묘를 알아보다
지석묘에 대한 아이들의 관심이 고조되었다. 암각화를 찾지 못한 아쉬움은 있지만, 다른 곳에서 뭔가를 찾아보려는 의지가 엿보였다. 마침 모현중 1년생 친구들이 모여들었다. 이 아이들과 함께 퀴즈게임을 시작하였다. 승자에게는 아이스크림을 사주고, 패자에게는 주?청소를 시킨다는 약소하에 5개 문제를 냈다. “모현지석묘의 형태는?” “탁자식이요”(대환). “맞아. 굄돌을 지상에 세워서 돌방을 이루고 그 위에 덮개돌을 올려 놓은 형태이지” “용인에는 몇 개의 지석묘가 있을까?” 맞춘 사람이 없었다. “양지면 주북리, 구성읍 하갈리, 원삼면 맹리 등 3기가 있다.” “모현지석묘의 특징은?” “규모가 크고 완벽한 형태로 남아 있다는 것”(정훈) “덮개돌과 굄돌사이에 쐐기돌이 끼워져 있다는 것”(준영) “그래. 쐐기돌을 사용하였다는 것은 그만큼 건축 역학적인 기술이 있었음을 증명해주는 요소야” “지석묘가 발견되는 곳의 주변 환경은?” “산이요”(아람) “강이나 하천”(정훈) “농경지”(준영, 대환) “ 글쎄. 모두 필요한 환경이겠지. 그러나 가장 중요한 요소는 물이야. 물이 없으면 사람이 살수가 없으니까. 강이나 하천 주변에서 인류의 문명이 발생하지. 선사시대에도 마찬가지야. 모현면에는 경안천이 있지. 그러니까 이곳은 선사시대 때 사람들이 살기에 매우 좋은 곳이었어” “지석묘의 또 다른 용도는?” 안내문에도 설명이 없어선지 이 문제도 맞춘 아이가 없었다.“무덤 말고, 제단(祭壇)으로 쓰였을 것이라는 학설도 있어. 그랬을 것 같애. 덮개석 위가 평평한 것이 제사 음식을 올려놓기에 좋아 보이지”. “생각해봐. 이곳에서 추장 아니 부족장의 무덤을 만들고, 제사지내고, 축제를 즐기고. 우가자가 우가자가 에에리 에헤 소리 들리니” “앞으로 모현면에서 축제를 한다면 이곳에서 고인돌축제를 했으면 좋겠어요”(준영, 정훈, 재환)
모현에 산다는 것이 자랑스러워요
아이들은 당장이라도 고인돌축제를 즐길 요량이다. 원시인들의 차림새로 횃불을 들고 고인돌을 돌며 마음껏 외쳐대는 그런 축제를 상상하고 있다. 정말이지 그랬으면 좋겠다. “자, 오늘 답사한 소감을 정리해보자” “고인돌축제 했으면 좋겠어요”(은표) “고인돌을 돌맨(Dolmen)이라고 하는데, 돌사람이라는 뜻이예요?”(대환) “글쎄다” “여기서 뭘 조사할 지 몰랐는데, 상당히 관심이 생겼어요”(정훈) “모현에 산다는 것이 자랑스러워요”(준영) “아빠! 질문 있어요. 어떻게 이렇게 큰돌을 옮겼어요?”(은표) “ 맞다. 그걸 빠뜨릴 뻔했어. 이렇게 큰돌을 어떻게 여기까지 옮겼을까?” “모래나 흙을 쌓고 그 위로 끌어서 옮긴 다음에 흙을 꺼집어 냈지 않아을까요?” “그랬겠지. 평지에서는 통나무를 교대로 받치고앞에서 수백牡?끌었을꺼야” “잠깐 몇명이 끌었을까?” “백명?. 백명이 끌었다고 하자. 남자들만 했을꺼고. 힘이 있는 장정들만 동원되었을 꺼고, 한 가족이 5명 정도였을 거라고 추정하고, 그렇다면 적어도 선사시대 때 왕산리에 5백이나 살았다는 애기야. 굉장히 큰 마을이었을 것 같다.” “용인의 역사가 모현면에서 시작되다. 그래도 될까? 모르지 선사시대 이야기이니까”<홍순석교수 /강남대 인문학부 hongssk@kangnam.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