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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장새기기 37년-류희송씨

용인신문 기자  1999.10.09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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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년동안 도장을 새긴 사람, 그는 아직도 자신을 초자라 말한다. 10년하면 10년 한것만큼 초자, 죽을때까지 배우다 가는 길. 도장이 시야에 들어오니 점점 어렵다고 말한다.
김량장동 한빛 은행 옆 1평 남짓한 자그마한 공간에서 하루종일 도장을 새기는 류희송씨(53). "어느 도장이고 사용할 때 그림같아야 합니다. 아름답고 마음에 닿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미술품이기 때문입니다."
도장에서 조형과 구상을 생명처럼 여기는 류씨. 그는 도장은 글씨의 미와 여백의 미가 동시에 구현돼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럴 때 아름답고 미적인 도장이 탄생한다고 말한다.
"자기만의 독창적인 세계를 갖고 있습니다. 아는척 하면 혼납니다. 고지식하고 권위와 주장이 강한 사람입니다."
담배를 사러 온 손님이 류씨를 많이 겪어 본 듯 촌평을 한다. 이름없는 쟁이를 격찬한다. 이와 대조적으로 잠시 후 한 부자가 찾아와 도장 파는데 얼마냐고 묻는다. 무슨 도장이 그리 비싸냐며 되돌아 간다. 류씨는 도장을 판다는 말에 질색을 한다. 파는게 아니라 새긴다가 옳다고 강조한다. 또 도장과 도장 주인을 동격으로 보는 그는 도장을 우습게 여기는 자세를 납득하지 못하겠다고 말한다. 투철한 장인정신, 쟁이정신.
장인 천시의 풍조가 전통의 단절, 퇴보를 가져왔다고 주장한다. 천한 일을 자식한테 물려주지 않기 위해 찬란한 청자의 비법도 무덤까지 가져간게 아니냐는 그의 말이 억지가 아니게 들린다. "일본의 경우 장인을 정책적으로 보호해 오늘의 일본이 가능한 게 아닙니까. 관청의 국장이 가업을 잇기위해 명예와 지위가 보장되는 자리를 내팽겨치는 사실을 우리나라에서 감히 상상이나 할 수 있는 얘긴가요."
그는 미를 추구하는 도장 작업에는 시간의 한계가 없다고 말한다. 최하 10시간 이상이 소요되고 위로는 한계가 없다. 그는 도장을 새길 때 시간 여유를 줘야 한다고 말한다. 그는 틈나는 대로 서체책을 연구한다. 공부를 토대로 창작성을 살리고 있다. 도장일 그만둘 때 인각교본 하나 만드는게 바램이다. 그래서 그는 자신이 새긴 도장을 죄다 찍어 스크랩해 놨다. 소전체의 자연스러우면서도 우아한 기품이 은은히 풍겨난다.
요새는 레이저, 혹은 컴퓨터를 이용한 도장이 나온다. 문명의 이기가 장인 문화에선 치명적이다. 미라는 개념은 아예 사라지고 인감위조도 판을 치게 된다. 일본에서는 일반 도장은 가게에서 판매한다. 일반 문서에서 성을 사용하기 때문에 성만 새긴 일반 도장은 매매된다. 그러나 인감만큼은 철저하다. 조각보증서제도가 운영돼 인감 사용할 때에는 서체 직경 체장 형 특징 색깔 등 보증서에 쓰여진 내용을 컴퓨터에 입력해뒀다 하나만 틀려도 인감이 발부되지 않는다. 가격도 비싸고 새기는 기간도 길다. 그러나 가격 타박하는 사람은 없다. 그래서 장인의 생계도 어렵지 않다.
우리나라가 후계자 걱정을 하는 원인 가운데 하나가 생계가 도저히 안되기 때문이다. 너무 대조적이라고 류씨는 한탄한다. 올바른 장인 정책이 서지 않는한 맥잇기가 힘들다고 역설한다. 양지가 고향인 류씨는 63년부터 도장일을 배웠다. 6. 25나던 50년대 다리를 다친 뒤 제대로 치료를 받지 못해 결국 장애를 앓게되면서 생계를 위해 앉아서 하는 일을 찾았다. 어느날 마을에 인장 행상이 들어왔다. 한나절 구경하던 18세의 류씨는 도장을 배워보겠다고 말했다. 인장 행상은 류씨집에 열하루 머물면서 류씨한테 도장일을 가르쳤지만 기본도 못배웠다. 당시 쌀 2가마라는 엄청난 대가를 치렀다.
그는 혼자서 노력했다. 잠시 수원과 서울을 배회하던 무렵, 남의집에서 도장일을 하던 류씨는 도장새기는 일을 단순한 기술로 생각했다. 69년에 용인에 정착했을 때도 마찬가지다. 도장을 제대로 안 것은 불과 15, 6년전이다. 새기다보니 글자의 미가 눈에 들어왔다. 조각예술이라는 사실을 알았다. 도장은 전예해행초서를 기본으로 20여개의 서체를 다룬다. 한문도 배워야하고 서예도 알아야 하기 때문에 어렵다.
아침 9시무렵부터 밤 10시까지 한자리에 쪼그리고 앉아 밀도와 다듬칼로 파고 다듬는 류희송. 소리없는 조용한 손놀림으로 오랜 인각의 역사를 묵묵히 새겨나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