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을사람들과 친근한 소바위의 추억
소가 넘어 갔다. 어릴적 이야기에서 말미에 장례차와 소가 부닥쳐 ‘소가 넘어 갔다’면서 깔깔 대던 옛 추억이 새롭게 느껴지는 초가을이다. 소는 매우 큰 동물로 거대함을 상징한다. 70년 수해때 용인전체가 물난리를 겪은 적이 있다. 백암면소재지가 물에 뜬 적이 있는데 이때 수정산 정상에 있던 거대한 소바위가 넘어졌다.
수정산 주위의 사람들은 이 소바위의 추억이 많을 것이다. 수정을 캐러 왔다가 소바위에 올라 일을 마칠정도로 기대와 성취감을 주던 바위다. 이 소바위가 있는 산은 맹리(맹골 내촌 능안), 가좌리(석실), 가창리(내창 선창)으로 둘러싸인 원삼동쪽에 솟은 수정산이다. 소바위 밑에 내창쪽 방향으로 9부능선에 있던 수정암은 70년 수해 때 산사태로 인해 스님과 공양주가 변을 당하고 없어졌다. 지금은 산서쪽에 수정사가 자리하고 있다.
수정사는 수정산 가슴에 안긴 절로 절 주위가 너무 아름다워 찾는 이가 많은 절이다. 수정산은 원래부터 바위가 많다. 하지만 바위가 둥글고 커서 느낌이 좋은 산이다. 특히 절 뒷편으로 큰 바위와 한그루 소나무는 예술품같아 용인의 보호수로 지정하고 싶은 마음이 들고 그 주위와 어우러진 아름다운 계곡은 찾는 이의 마음을 흔든다. 바위위에 자리한 미륵상을 끝으로 수정사경내 구경은 끝이난다.
■용인 최초 남방식 맹리지석묘
비개인 오후 17번국도를 달리다 행군리(원삼면)에서 건지산을 향해 들어서면 맹리 마을회관에 도착한다. 마을회관 북쪽 담에 붙어있는 도지정문화재 68호 청동기시대 유물 맹리지석묘(고인돌)을 찾았다. 1985년 발견된 이 지석묘는 남방식으로 밝혀져(그때까지 용인은 북방식 지석묘만 있을때라) 용인이 남방식과 북방식의 고인돌이 공존한다하여 중요한 사료로 인정받은 문화재다.
지석묘주위를 스테인레스로 담을 만들었지만 텃밭안에 나무들과 담에 가려 찾기조차 힘들었다. 두개의 돌을 잘 맞추어 놓았고 술잔같은 성혈은 지금도 선명했다.
수정산을 오르려면 맹리에서 건지산과 수정산 사이 고개에서 시작해야 한다. 고개로 가는 길에 노천 쉼터가 있다. 큰 나무아래 시멘트로 깨끗하게 만들어 놓은 쉼터는 사철에 한가로움을 주는 멋진 곳이고 그 위로 현대식으로 마을 연혁 및 마을 이야기를 담아놓은 표지석을 만들어 놓은 새로운 숨터가 있어 맹리 사람들의 여유있는 삶을 느끼게 한다. 쉼터 앞으 통하는 길로 동양연수원을 지나면 수정사가 있다.
■ 정상에서 보는 확트인 전원풍경에 흠뻑
수정사를 통해 수정산에 접근하는 것이 제일 쉬은 코스다. 수정사 입구 시멘트길(전원주택을 지으려고 만든 길) 세갈래중 맨 끝에 둥근 주차장에서 등산을 시작한다. 묘터길로 오르는 것이 길이 넓고 편하다. 두 길 모두 내동입구 쉼터에서 오르는 길과 만난다. 세길이 합쳐져 싸리나무가 많은 숲길을 오르면 처음 만나는 것이 큰 바위로 바로 소바위다. 바위나 바위틈을 통해 뒤로 가면 오를 수 있는 나무받침이 있다. 받침을 통해 소바위에 오르면 원삼면이 한 눈에 들어온다.
웅대한 바위위에 올라 세상을 내려다 보는 기분은 정말 표현하기 힘든다. 내 마음의 흥분과 환희, 결코 다른 산에서 느껴보지 못한 소바위 위의 전망은 너무다 당당하다.
소바위 뒷길에서 북쪽방면으로 가면 수정산 정상으로 산사랑에서 만든 정상 이정표가 오래되서 희미하다. 조금 내려서면 작은 소바위 같은 흰바위는 야호바위로 명명하고 야호를 외쳐본다.
계속내려서면 건지산과의 경계 고개로 통한다. 정상에서 동쪽으로 통하는 길은 내창으로 통하는 길이다. 60년대 친구 신동권(전 원삼농협조합장)과 수정을 캐2올라 수정도 줍고 소바위에 올라 소리치고 뒷편 수정암에 올라 부처님께 절했던 아련한 기억은 이미 사라졌고 소바위에 올라 원삼을 내려다 보며 산으로 둘러싸인 용인의 복지 원삼의 전원풍경에 취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