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방에 초임 소대장으로 부임했을 때 일이다. 중대 인사계를 맡고 있는 나이 든 상사 한분이 계셨는데 어찌나 잔소리가 많고 꼼꼼한지 병사들에겐 그야말로 시어머니 같은 존재였다.
그중에 인사계의 잔소리를 가장 많이 듣는 병사는 목수노릇을 하는 ‘목공병’이었다.
군대에서는 목재가 귀할 뿐만 아니라 목재라는 건 한번 잘못 다루면 필요한 곳에 쓸수 없게 되기 때문에 각별한 신경을 썼던 것이다.
당시 인사계가 목공병의 귀에 못이 박히도록 했던 말이 있는데 지금도 필자에게는 삶의 금과옥조(金科玉條)로 남아 있다.
‘이놈아! 좋은 목수는 자질은 열 번 톱질은 한번만 하는거여’
자질은 열 번 톱질은 한번. 훌륭한 목수는 자로 재고 또 재고를 반복, 정확한 계산을 한 뒤에야 비로소 톱질을 한다는 말이다.
필자는 기자생활을 하며 수많은 정책이 입안되고 시행되는 것을 봐왔다. 그 중엔 당초 기대와는 달리 실패로 돌아가는 정책도 적지 않았는데 그때마다 ‘자질은...’이라는 인사계의 잔소리가 떠오르곤 했다.
어디 정책뿐만이랴 개개인의 세상살이도 치밀한 계획과 부단한 실험(simulation)이 필요한 것을.
요즘 수지지역이 시끄럽다. 지난 1일부터 경기도가 국가지원 지방도(국지도) 23호선 수지~분당 금곡IC 입구 1.6㎞구간에 ‘버스중앙전용차로제’를 도입한 것이 오히려 체증만 불러일으키고 있기 때문이다.
도는 왕복 6차로인 이곳의 하행 1차로(중앙부분)에 진입방지봉을 설치하고 버스중앙전용차로를 만들었다. 그리고는 오전 4~10시까지는 서울∼분당 방향(상행)으로, 오전 11시부터 다음날 오전 3시까지는 수지 방향(하행)으로 버스만을 운행토록 했다.
그러나 진입방지봉으로 차선변경에 어려움을 겪은 버스들은 하행시 전용차선을 기피, 일반 차량과 같이 2∼3차로를 이용했고 결국 하행차선 하나가 없어진 결과만 초래됐다. 도는 이틀뒤 부랴부랴 하행 전용차로를 폐지했고 상행 운영시간도 오전 6∼8시로 단축했지만 사정은 전혀 나아지지 않고 있다.
출근시간을 제외하면 버스가 아닌 일반 차량도 하행 1차로 진입이 가능하지만 버스를 포함한 모든 차량들은 진입방지봉을 피해 2∼3차로만 파고 들고 있다.
시행한 정책을 이틀만에 변경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개선된 것은 없고, 주민들의 불만은 폭주하고.
이건 분명히 충분한 ‘자질’을 하지 않고 ‘톱질’을 했다는 증거다.
그런데도 경기도는 ‘문제점은 차차 개선해 나가면 된다’는 느긋한 입장이다. 환자에게 잘못된 처방을 해 고통을 줘놓고 ‘차차 고치면 된다’라는 논리와 다를게 없다. 더구나 앞으로 이같은 버스중앙전용차로를 도내 10여곳으로 확대하겠다는 계획까지 발표했다. 걱정이 앞선다.
‘자질은 열 번 톱질은 한번’
초등학교 밖에 못나온 인사계였지만 그분의 교훈에 또 한번 고개가 끄덕여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