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자기 벽화라는 아주 특색있는 사업을 실시하고 있는데 왜 하게 됐나.
동민들이 좀더 쾌적한 분위기 속에서 생활 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도자기 벽화 사업을 구상했다. 많은 사람들의 의견을 수렴했는데 도자기 벽화가 사후 관리가 필요없고 영구적이라며 추천을 많이 해줬다. 현재 반응이 매우 좋다. 특히 초등학생을 참여 시킨 것은 나름대로 보람을 느낀다. 한 30년쯤 지난 후 어린이들이 성장해서 추억을 가질 수 있으니 얼마나 좋은가. 현재도 할머니 손을 잡고 나와 자신의 작품을 찾아보는 모습을 종종 대할 수 있다. 옹벽 도자기 벽화 사업은 상현동만의 명물이 될 것이다. 왜냐하면 이렇게 많은 옹벽은 상현동밖에 없기 때문이다. 특히 주택공사에서도 상현동 도자기 벽화를 둘러보고 갔다. 그들은 아파트 벽면 장식에 획기적이라고 찬사를 보였다.
-복도를 갤러리로 이용하고 있다고 들었다.
수지쪽에는 문화공간이 없다. 문화향유의 욕구를 조금이나마 덜어주고 싶은게 솔직한 심정이다. 주민자치센터가 본격 운영되면 미술 도자기 서예 작품전도 사무소 로비나 복도에서 실시하는 등 동사무소를 전시 및 휴식 공간으로 활용할 계획이다.
-1층에 있는 어린이집은 무엇인가.
어린이집이나 놀이방에서도 받아주지 않는 영아들 때문에 일을 할 수 없는 엄마들을 위해 영아반을 운영하고 싶다. 이는 주민자치센터에서 적극 관심을 가져줬으면 하는 바램이 있다.
-첫 여성 상현동장으로 부임한 게 2001년으로 안다. 지난 4월 2년만에 성복동과 분동을 맞아 신청사로 입주한 소감은.
상현동은 2001년 12월 개청과 더불어 성복동 61-8번지에서 건물을 임대해 업무를 수행했다. 1년동안 매일 100명정도의 인구가 늘어나 도저히 민원실 업무를 처리할 수 없어 2층 회의실에 또 창구를 설치했다.
열악한 환경과 적은 인원으로 민원실을 두곳에서 운영하다보니 우리도 무척 힘들었고 또한 질좋은 서비스를 해주지 못해 많은 불편을 줬다. 앞으로 더욱 친절한 서비스를 위해 노력하겠다. 이제 비좁은 청사에서 쾌적한 신청사에 걸맞은 서비스로 동민에게 성심껏 봉사할 것을 다시한번 다짐해본다.
-상현동은 원주민과 유입 인구의 비율이 어떤가.
상현동 현황은 아파트 33개 단지, 1만4390가구, 4만5410명으로 구성돼 있으며 원주민은 채 3%, 즉 1500여명에도 달하지 못한다.
-동정의 방향은 어떻게 잡고 있나.
생활의 불편을 살피면서 하나 하나 개선해 나가는 데 역점을 두고 싶다. 주민들이 처음 들어와 불편이 많았으나 나의 경험을 모두 쏟아 열심히 노력하고 있다. 도로표지판 설치나 자연부락 골목골목 가로등 설치 등 주민들이 원하기 앞서 내 스스로 구석구석을 찾아나서 불편을 덜어주고 싶다.
-상현동은 난개발의 오명을 들어왔는데 이제는 아름답고 살기 좋은 동네로 유명해질 것 같다.
상현동은 도시계획이 수립되지 않은 상태에서 IMF 당시 정부의 경기부양정책 일환으로 형성된 도시가 되다보니 난개발이란 오명을 받아왔다. 그러나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아파트 단지를 나서면 차를 타고 가지 않아도 주변 산에 오를 수 있고 또 계획된 도시처럼 획일적이지도 않기 때문에 오히려 이런 점을 잘 활용한다면 오밀조밀 정겨운 도시가 되리라고 확신한다. 또 상현동은 시간이 지나면서 많이 안정돼 가고 있다. 편의시설이나 교통시설 등이 점차 나아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