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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면에 숨겨진 불안·공포를 상징적으로 표현

용인신문 기자  2004.01.13 17: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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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구 ‘스칸디나비아’의 몇 개의 유명한 미술관 중 개인 미술관으로 우선 꼽히는 미술관은 ‘스웨덴 스톡홀름’의 밀레스 조각미술관 과 ‘오슬로’의 ‘뭉크 미술관이다. 그리고 ’덴마크‘의 ’루이지아나 미술관‘을 말할 수 있다. 이들 미술관들은 대체로 그 작가와 인연이 깊은 특색이 있다

특히 ‘밀레스’와 ‘뭉크’의 경우가 더욱 그렇다. 물론 전체적인 것은 아니다. 그러나 한 작가의 대표적인 작품을 보기 위해서는 그 곳을 찾지 않을 수 없는 경우가 허다하다.

개인 미술관은 아니지만 ‘베라스케스’ ‘고야’같은 ‘스페인’ 출신의 거장들의 대표작을 보기 위해서는 ‘스페인’의 수도 ‘마드리드’에 있는 ‘프라도 미술관’을 찾아야 한다.

‘피카소’ ‘마티스’ ‘샤갈’같은 미술가의 작품은 세계 어디에 가도 널리 있는 편이지만 가령 ‘고호’의 작품은 다른 지역에 가선 대표작을 좀처럼 찾아보기가 어렵다.

‘네덜란드’의 수도 ‘암스텔담’의 ‘고호 미술관’을 가지 않으면 ‘고호’의 진수를 맛볼 수가 없다. 같은 경우로 ‘밀레스’ 나 ‘뭉크’의 진수를 보려면 북구 ‘스칸디나비아’ 지방을 여행 하지 않으면 안 된다. 사연은 있으나 이렇게 한 작가의 작품이 한곳에 모여 있는 것은 생전에 작품들이 분산 되지 않았기 때문인데 또 작품이 팔리지 않았다는 이야기기도 하다.고호의 경우를 보면 가장 적절한 예가 된다.

‘뭉크’의 경우도 예외가 아니다. 그의 대표적인 작품이 고스란히 ‘오슬로’에 남아 있었던 것도 따지고 보면 ‘뭉크’의 생존시에 작품이 팔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뭉크’의 작품을 보기 위해서는 ‘오슬로’를 찾지 않으면 안 되는 수고스러움도 없지 않지만 ‘오슬로’에 가면 ‘뭉크’의 모든 것을 한자리에서 접할 수가 연구하는데 도움이 된다.

원래 ‘뭉크’의 작품들은 ‘오슬로 구립미술관’의 한 전시실에 집중적으로 진열 되어 있었으나 근래에 와서 ‘뭉크 미술관’을 신축 하고 많은 ‘뭉크’의 작품과 자료들을 한자리에 모아 놓았다.

특히 이 미술관의 특징은 지하에 ‘뭉크’가족들의 작품이 전시된 공간이 있다. 테라스로 이루어진 ‘카페테리아’는 넓은 잔디밭과 우거진 수목을 바라보면서 차나 식사를 즐길 수 있어 미술관을 찾은 즐거움을 배려한 것이리라.

‘뭉크’는 19세기말과 20세기 초에 거쳐 활동한 화가로 극히 짧은 시기를 제외한 거의 일생을 ‘노르웨이’와 ‘독일’을 오가며 살았다. 북구의 대표적인 인상파를 극복하는 일련의 분리파 운동에서 출발 하면서 종래는 독자적인 표현파 풍과 상징주위에 도달하고 있다. 특히 표현파 운동에 미친 그의 영향은 크다.

그는 사랑과 죽음 이라는 이율배반적 주제의 왕복과 교차에 당혹감을 맛보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마리의 죽음’ ‘병실에서의 죽음’‘죽음과 소녀’와 같은 주제에 스며있는 강한 죽음의 그림자 ‘사춘기’‘마돈나’‘입맞춤’과 같은 주제가 반영하는 관능과 사랑의 격정은 확실히 배반적인 것이다. 지난 가을 ‘ICOM 2003`$$` Hersinky [세계박물관협회 미술분과]회의차 ’핀란드‘수도 ‘헬싱키’에서 만난 뭉크 미술관의 노관장(老館長)의 당당함에 놀랐다. 30년을 이 미술관에서 근무하고 앞으로 20년을 더 일하겠다는 그의 말에많은 것을 일깨워 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