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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인지역의 마을지킴이를 찾아서

용인신문 기자  2004.02.12 22:0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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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에는 마을 입구에 정승이나 당나무가 서 있었으며, 이들이 마을을 지키는 수호신으로 숭배되었다. 주로 정월 대보름날엔 마을지킴이들에게 제물을 바쳐 정성드렸다. 용인지역에서도 예외는 아니다.

구체적인 사례를 조사하기 위하여 은표, 김태형(용인초 4년), 이수연(용인초 4년)과 함께 포곡면 신원리의 선돌과 유방동의 서낭목을 찾았다.

포곡면 신원리의 마을지킴이 선돌

포곡면 신원리에는 청동기 시대 유물인 선돌이 2기가 남아 있다. 에버랜드에서 모현면 매산리 쪽으로 나가는 지방도 길가에 있는데, 좌측 선돌의 규모는 58×197×118㎝이다. 둘레는 336㎝이다. 우측의 선돌은 작은 규모인데, 55×179×90㎝이다. 둘레는 290㎝이다. 그 옆에는 느티나무가 있는데 둘레 4.7m, 높이 20m 가량으로 수령은 대략 450여년 이라고 한다.

이 마을에 거주하는 용인이씨 문중에 전하는 말로는 임진왜란 무렵 이일장군이 심은 것이라고 한다. 선돌도 이일장군이 어렸을 때 양쪽 겨드랑이에 하나씩 끼고 옮겨다 놓은 것이라 한다.

한편, 청주이씨 쪽에서는 이태조의 딸인 경신공주가 청주이씨 가문인 이애에게 시집올 때 이 마을을 사패지로 받으면서 경계를 표시하고자 세운 蔓繭箚?한다. 이 선돌에는 또 다른 전설이 전한다. 옛날에 과거 보러 가는 유생들이 이 앞을 지나다가 쉬었다 가곤 하는데, 짚신을 벗어 던져서 이 돌 위에 얹히면 급제할 운이라고 믿었다고 한다. 이와같은 여러 전설은 후대에 부연된 것으로 보인다. 주변에서 이미 고인돌이 발견되어 학계의 고증을 거쳐 발표된 바 있으며, 선돌 주변에서 돌칼 등이 출토되기도 하였다고 전한다.

신원리 마을에서는 근래까지도 이 선돌에서 동제를 지냈다고 하며, 아이를 갖지 못한 부인들이 기도하여 아들을 낳았다는 이야기도 있다. 개인적으로는 지금까지도 치성을 드리고 있음이 확인되었다. 그 물증이 이번 답사 때도 발견되었다. 길가의 선돌 뒤편에 치성드리고 두고 간 떡이 있었으며, 막걸리를 부은 흔적이 역력하게 남아 있다.

유방동의 마을지킴이 서낭목

신원리의 선돌에 대해서 아이들과 함께 조사한 다음, 유방동의 마을지킴이로 숭배되는 서낭목을 다시 찾았다. “선돌에 대해선 고인돌 답사 때 배워서 알았잖아요. 그런데 왜 또 이 고목나무에 왔어요?”(은표) “이번 답사는 문화재보다는 마을을 지켜주는 대상을 찾아서 민간신앙을 알아보는거야”. “아까 있었던 고목나무엔 헝겁천이 없었는데, 여기는 왜 매달아 놓았어요?”(태형) “ 여기에는 작은 돌을 수북히 쌓아 놓았고요, 아까 거기엔 큰돌만 있는데 같은 거예요”(수연) " 돌 사이에 떡, 사탕, 북어가 끼어 있어요. 왜 여기다 버리고 가는지 궁금해요“(은표) 아이들은 선돌보다는 이곳 서낭목에 관심이 더 많았다. 청홍황색의 헝겁천이 나무에 걸려 있어서 더욱 신비롭게 보인 것 같다. 그 옆에는 정월대보름날 지낸 당고사 흔적이 그대로 남아 있었다. “우선, 헝겁천을 매달아 놓은 것은, 이곳에서는 아직도 마을사람 모두 모여서 고사를 지내고 있다는 흔적이다.

바로, 일주일 전에 고사를 지낸 것 같아. 선돌에 있는 고목나무에서도 옛날에는 그렇게 했을거야. 선돌과 여기 쌓아 놓은 작은 돌도 본래는 차원이 다른 것이지만, 민간신앙에서 보면, 돌을 숭배한다는 점에서 다를 것 없잖아. 그리고, 선돌에서도 떡과 막걸 리가 있었고, 여기에도 그렇고. 아, 여기에 버려진 사탕들은 요즈음에 와서 바뀐 양상이지.” 서낭목과 제단에는 매우 많은 사탕이 버려져 있었다. “여기 사탕은 아마도 마을 주민들이 자기 소원을 빌면서 던져 놓은 것일거야. 너희도 여기에다 소원을 빌어봐” 아이들은 주변에 있는 작은 돌 세 개를 주워 올려놓고 각자
의 소원을 빌었다. 매우 진지하고 경건하게. “아빠, 여기 말고도 고사지내는 곳이 많이 있어요

” "그럼, 용인에서도 많이 있어“ 불과 두 시간도 채 안 되는 답사였지만 돌아올 때 아이들의 마음은 한층 커 보였다.

* 용인지역에서도 각 마을마다 이 같은 민간신앙이 존재했지만, 구체적인 조사는 별반 없었다. 이번 답사에서 확인한 민간신앙은 『용인의 마을의례』에도 소개되어 있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