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적은 바뀌어도 모교는 변하지 않는다. 태성인의 긍지와 자부심을 갖고 행하라”
태성인으로 벌받으면 되겠느냐!
지난 20일 태성중학교 교정에서는 34년의 교직생활을 마감하는 이강수교장(65)의 회고사가 운동장에 퍼져나갔다.
1261명의 학생들과 사회에서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는 제자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회고사를 낭독하는 이 교장의 얼굴에는 이슬이 맺혔다.
홍익대학교 미술학과를 졸업하고 대전에서 첫 교편을 잡은 이교장은 72년 용인 태성중학교 교사로 부임했다.
태성중학교와 고등학교에서 미술을 지도하며 태성인과 함께 한지 어언 30여년.
“제가 부임할 당시는 전형적인 시골학교였습니다. 많이 어려웠어요.”
미술실이 없어 창고 등을 활용하는 어려운 환경 속에서 한 해 2∼3명의 미술학도를 배출했다. 지금은 미대교수에서부터 디자인계통에 이르기까지 사회에서 리더로 활약하고 있는 제자들로 인해 어깨가 으쓱해진다
현실을 무시할 수 없어 순수미술보다는 디자인미술에 더 많은 비중을 두고 가르쳤던 이교장. 그가 환갑을 맞은 날 제자들은 태성미술동문전을 열어 뜻깊은 자리를 마련했다.
스승과 제자의 끈끈한 정은 시간이 흐를수록 을 발했다.
근속 20주년 되는 해에는 제자들이 자가용을 선물로 갖다주는 바람에 1년 동안을 모셔놓아야만 했다고 미소짓는다.
전세방을 면치 못했던 시절, 이사를 하게 될 때면 어느 새 학교 리어카를 끌고 와 이삿짐을 날라준 제자들…. “그때는 왜 그렇게 뻔질나게 이사를 다녔는지……”
“박봉이지만 해볼만한 직업입니다. 사람을 만드는 직업으로 보람된 직업 아니겠습니까?”
미술교사로 출발해 교장이 되기까지 그의 투철한 교육관은 태성인들이 사회에 모범이 되는데 기여했다. 그의 교육열은 강력한 생활지도로 이어져 두발자율화에도 동참을 하지 않았다.
뿐만 아니라, 정부시책으로 보충수업을 하지 못하게 했던 시절, 말썽이 생기면 문책 받을 각오로 보충수업을 강행했다.
학생과 부모들로부터 항의를 받았지만 소신을 갖고 펼친 그의 교육은 모두를 감동시켜 오히려 울타리와 바람막이가 됐다.
언행과 용모가 단정한 태성인들이라는 칭찬의 이야기가 들려올 때면 참보람의 의미를 되새기게 된다.
한국미술협회로부터 지도교사표창, 경로효친 포스터 채택으로 문교부장관 표창, 지역사회 특별공로를 인정받아 문화대상 수상 등 그의 투철한 교육관이 날개를 달았다.
우수인재를 양성하기 위해 91년 교감을 맡으면서 시도한 과학특기적성반은 전국 발명경시대회에서 온갖 상을 휩쓸면서 태성중학교가 과학교육우수학교로 두각을 나타내며 경기도로부터 우수과학학교로 선정됐다.
“학교교육은 의도적인 교육으로 계획적인 교육을 해야 합니다.”
이와 관련, 숙원사업이었던 370여평 지상 3층 규모의 과학발명센터가 올해 세워진다.
언행일치와 바른 생활을 강조하는 이교장이 길을 갈 때면 어디선가 태성! 을 외치며 거수경례를 하는 학생들이 나타나 교장선생님 어디가세요? 물어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