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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인칼럼-영화 ‘실미도’

용인신문 기자  2004.02.24 14: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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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항간에 화제가 되고 있는 영화 ‘실미도’를 보았다. 나처럼 나이를 좀 먹은 남자가 영화를 보러간다는 것은 참으로 어려운 일이다. 아무리 기억을 되살려 보려해도 최근 언제 극장엘 갔는지 생각이 안 나는 걸로 보아 몇 년은 되었나 보다. 1년에 영화를 한 편도 안 본다는 말을 문화를 아는 사람들에게 하면 비문화인이라고 비웃지 않을는지 모르겠다.

이렇게 오랜만에 극장에 가서 영화 ‘실미도’를 본 것은 순전히 딸아이가 내게 한 “영화 실미도를 안보면 미개인이다.” 이 말 한마디 때문이다. ‘비문화인’까지는 참아줄 수 있겠는데 ‘미개인’이라는 말에는 참을 수가 없었다.

그런데 영화를 보니 정말로 재미있었다. 필름이 돌아가는 2시간동안 잠시도 눈을 뗄 수 없었고, 한 순간도 긴장을 늦출 수가 없었다. 완전히 영화 속에 빨려 들어가 매혹되었다고나 할까....

‘무장공비의 만행’으로 보도되었던 사건 당시 필자는 육군 포병 관측장교로 최전방에 위치한 강원도 모 부대에 근무하고 있었다. 경제적으로는 비약적인 발전을 이룬 시기였지만 정치, 사회적으로는 매우 경직된 시대였기 때문에 그들이 실미도에서 훈련받은 우리의 젊은이들이었다는 것은 누구에게도 들을 수 없었고 감히 상상조차도 할 수 없었다.

지금 그 이야기가 영화로 만들어지고 나를 포함한 많은 사람들이 이 영화에 매료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헐리우드 영화와 경쟁하기 위해서 수월찮은 제작비를 들였다고 하나 내 안목으로 보기에 스펙터클한 장면도 별로 없고 엄청난 돈이 들어갈만한 세트장 같은 것도 크게 눈에 띄지 않았다. 소위 말하는 블록버스터 영화로서의 면모는 별로 갖추지 못하였다는것이 내 느낌이다.

그보다는, 우리 한민족 누구에게나 직ㆍ간접적인 한으로 남아 있는 분단의 아픔을 배경으로 냉전시대의 제물인 북파공작대 684부대원들의 동료애가 우리의 가슴에 진하게 와 닿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다.

비슷한 경우로 ‘모래시계’나 ‘친구’와 같은 조폭들의 이야기가 우리 사회에 크게 반향을 일으킨 것은 지금은 메말라서 찾아보기도 힘든 동료애, 바로 의리가 거기에 있기 때문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그렇다. 우리가 자꾸만 잃어가고 있는 휴머니즘, 그리고 사랑이 거기에 있기 때문이다.

따뜻함을 잃어 가는 우리 사회. 힘들고 지친 하루 하루의 연속일 뿐 획기적인 반전기회나 희망이 없는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이 영화를 보고 공감하며 광하는 것이 아닐까?

하여튼 그렇게 무겁고도 암울한 주제를 가지고 이렇게 재미있는 영화를 만든 한국인들의 재능에 찬사를 보낸다. 그리고 오랜 역사에서 보아 왔듯이 어떠한 역경이나 슬픔도 이겨내고, 이를 오히려 새로운 시작으로 전환시키는 한국인 특유의 끈기와 근성을 우리 모두 잃지 않기를 바라마지 않는다.

아직 풀리지 않는 의문이 하나 있다. 그들이 청와대로 가기 위해 탈취한 버스 안에서 자폭하기 전 비장하게 부르던 노래는 ?적기가?이다. 이 노래는 남로당의 빨치산들이 부르던 노래로 알고 있다. 그런데 왜 그들이 그 노래를 부른 것일까. 여기저기 자료를 찾아보니 실제로 그들은 그 날 그 노래를 부르지 않았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