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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탐방35 / 양지종합기획

용인신문 기자  2004.08.30 16:3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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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생 인쇄로 외길을 걷고 있는 이영래 양지종합기획 대표.

그는 인쇄의 메카인 서울 중구 인현동에서 젊은 시절 인쇄일로 인생을 불사르기 시작해 오늘에 이르기까지 30여년을 오로지 인쇄일에 묻혀 살아오고 있다.

“같은 인쇄만 해서는 안됩니다.”

지난 90년대 말 용인 양지면 외가집 터로 공장을 이전해 와 전성기를 구가하고 있는 이 대표.

인쇄업계에서 항상 앞선 기술을 도입하는 그는 최근 중국의 인쇄시장 잠식 등 시장의 위축과 하루가 다르게 변화하는 시장에 적응하기 위해서는 창의적이고 획기적인 상품의 제작 없이는 살아남기 힘들다며 자신만의 독창적인 인쇄 상품을 구상해 내야 한다고 강조한다.

제2의 도약을 선언하고 있는 이영래 대표.

현재 완제품을 개발해 낸 그는 끊임없이 독창적인 상품에 도전하느라 골몰하고 있다.

그동안 그는 외부 주문 물량에 치어 한시도 쉴틈없이 기계를 돌려왔다.

그의 인생은 인쇄로 인한 땀과 근면과 성실로 이뤄졌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평생을 여행 한번 제대로 다녀보지 않고 오로지 인쇄 일만 매진해 온 이 대표.

일반인쇄를 비롯해 UV, 실크 및 각종 특수인쇄, 마이다스, 포카생산(PVC, PP, PET 기타 특 소재) 등 폭넓은 분야에 풀라인을 갖춘 전국의 선진 업체로 인쇄업계에서는 둘째 가라면 서러운 그다.

최근들어 잠시 짬을 내서 해외의 인쇄 박람회 등을 다녀오는 그는 한시가 다르게 변화 발전하는 인쇄술을 접하면서 좌불안석이다. 그는 인쇄 전시회 다녀와서 자신의 위치를 확인하곤 한다.

“일에 치어 살다보니 세상물정을 몰랐습니다. 그동안 자산이라면 몸으로 떼우는 것과 기술자와 기계화가 다였는데 지금은 지식과 정보가 없으면 안됩니다. 정보가 있어야 응용을 하고 남들과 차별화를 추구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고가의 장비가 문젭니다.”

시장의 변화가 심해 과거에는 기계가 좋으면 일이 왔는데 이제는 내일을 예측하기 힘들다는 이영래 대표.

이같은 고민을 자신만 느껴서는 안된다고 생각하는 그는 직원들도 모두 해외 박람회 등을 다녀오게 하므로써 무궁한 인쇄 시장을 인식하게 하고 스스로 부지런히 개발하고 꿈과 비전을 갖게 만들어 준다.

인쇄 특기생으로 공군을 마치고 남의집 공장장으로 일하던 시절. 1971년 카드가 처음 시작됐을 때 신세계 크레딧 카드를 만들었다.

과거 실크 인쇄 풍조에서 처음으로 PVC 인쇄가 도입됐을 때다. 특수잉크가 나온 것이 85년 정도이니 그전에는 일반 잉크로 PVC 인쇄를 했다.

소량의 제품을 좁은 공간에서 하던 시절, 다셋 인쇄기가 없고 1도 인쇄기로 해야 했는데 잉크가 건조되면 다음 색깔이 오르지 않기 때문에 완전히 마르지 않고 꾸덕꾸덕한 상태에서 또 넣어야 한다. 빨래집게로 널어 말려가면서 대기 인쇄를 해야만 했는데 꾸벅꾸벅 졸아가면서 밤을 새워 일했다. 너무 힘들어 밤에 많이 울었다. 책받침과 프라스틱 화투가 그때 처음 나왔다.

간간이 특수인쇄 주문이 들어오던 시절이다보니 인쇄소에서는 귀찮아서 않 했다. 그러나 이 대표는 남이 안하는 것, 안된다는 것을 오기로 하다보니 이영래 한테 가면 뭔가 된다는 소문이 나면서 물량이 몰려들었다.

스카웃 제의도 들어오고 몸값도 대단했다. 월급이 다른 사람보다 훨씬 많아 74년에 월급을 30만원을 받을 정도였다.

그후 79년에 자영을 하게 됐는데 워낙 자본이 없이 시작하다보니 엄청난 가격의 인쇄기계 등을 빚으로 들여와 10여년 이상을 버는 돈은 빚을 갚는 데에 몽땅 써야 할 정도로 어려운 시절을 겪었다. 집에 월급을 못 주는 것은 고사하고 어머니가 바느질 해서 번 돈까지 내다 써야 했다.

김영삼 정부 시절 인쇄업체에 저리융자 기회가 생겨 이때부터 도약의 발판을 마련해 인생에서 처음으로 돈을 모으기 시작했다.

이 사장은 진정 인쇄인이다. 재산이 축적되면 힘든 일 그만두고 편하게 살 법도 하지만 좀더 특수한 장비를 구입하고 기술을 진보시키는 데 투자한다.

“사장이 돼야 한다는 생각, 돈을 벌어야겠다는 생각을 않고 살아왔습니다. 다만 일을 내맘대로 해야겠다는 생각으로 열심히 일했습니다. 제가 밤일을 하면 수당때문인가 하는 오해를 받곤 했는데 저는 그렇지 않았거든요. 그래서 원없이 신나게 일해보자는 생각으로 열심히 일해 사장이 됐고, 이제 원 없이 일해본 것 같습니다.”

1년 365일 가운데 210일은 철야를 했고, 나머지 90일은 야근을 할 정도로 일을 했다. 건강이 탁월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는 별도의 운동을 통해 몸을 관리한 적이 없다.

“노동이라 생각하니 힘들지요. 일을 운동처럼 즐겁게 하니 몸이 건강할 수밖에요.”

그는 장비의 현대화와 고속 자동화가 꿈이란다. 고객이 원하는 수준의 품질을 만들어 내는데 부족하지 않을 수 있다면 그는 더 이상 바랄 게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