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에 모처럼 옛 동창들과 만나는 연말 모임에 갔었다. 그 자리에서 중·고등학교 교사로 재직하고 있는 동창 몇이서 한 말이 영 잊혀지질 않는다.
“지난 정권이 우리나라의 경제를 말아먹은 정권이라면, 현 정권은 우리나라의 교육을 말아먹은 정권으로 역사에 남을 것이다. 오늘날 중·고등학교 교실에서 교사의 권위는 땅에 떨어졌다. 수업시간에 잠을 자는 학생이 반 수 이상인데도 어쩔 방법이 없다.”
그리고 얼마 전에 TV에서 방영했던 중·고등학교의 일그러진 교실 풍경은 일부의 극단적인 예가 아니라 보편적인 것이라고 했다. 한 교사가 셋째 시간의 수업을 하려고 교실문을 열고 들어갔더니 많은 학생들이 도시락을 먹고 있길래 나무랐더니 도시락을 넣을 생각은 않고, “이제 다 먹어가요. 조금만 기다리세요.”하더란다.
요즘은 또 대학교수들이 입학시험 때 돈을 먹고 실기점수를 높여주어 부정입학을 시켰다고 해서 말썽이 일고 있다. 그런데 들리는 얘기로는 이런 것들은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다고 한다. 예체능계의 경우 전국대회 입상 성적이 있으면 특기생으로 입학이 가능한데 돈이 많은 학부느?대학교수 및 협회와 담합하면 얼마든지 좋은 대학을 보낼 수 있다고 한다.
예를 들면 돈이 많이 드는 승마협회에 자녀를 등록시키고 후원금을 내서 별 소문 없이 지방에서 대회를 개최하여 그 자녀를 입상시키면 된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입상할때가지 대회를 계속 열거나 신설하는 작전이다. 또한 일반 종목에서 실력이 있는 선수가 대학에 스카웃 되어 갈 때 고등학교팀의 코치와 담합하여 끼어 타기를 하는 수법은 이미 잘 알려진 사실이다.
이와 같이 우리나라의 교육계에는 아직도 부정부패가 뿌리 뽑히지 못하고 있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개혁의 칼을 뽑고, 그 중에서도 빠지지 않는 것이 교육개혁이었는 데도 말이다. 어느 정권, 어느 교육부장관이 대학입시제도를 비롯한 교육제도에 손대지 않은 적이 있는가? 그 동안 그렇게도 여러 번 교육개혁을 했는데 오늘날 교육의 현실이 이렇게 나타나고 있는 원인중 한가지는 흑백논리 때문이 아닌가 생각된다.
세상의 일은 모두 장단점의 양면성을 가지고 있다. 그런데 어느 한쪽만을 강조하여 너무 쉽게 국가의 백년대계인 교육정책을 바꾼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다. 옛부터 ‘교육에는 왕도가 없다’고 하였거늘 좀더 심사숙?臼?차근차근히 시행착오를 줄여 나가는 만만디 정신이 필요하다. 석유 한 방울 나지 않고, 그 밖의 천연자원도 보잘 것이 없는 우리나라가 오늘날 이만큼 성장해 온 것은 그래도 불같은 국민들의 교육열 때문이라고 한다. 해마다(?) 바뀌는 대학입시제도와 고액과외 열풍속에서 굳굳이 자녀교육을 해온 학부모나 밤잠을 자지 않고 지금도 독서실에서 공부하고 있는 우리의 자녀들이 대견스럽기도 하다.
그래서 요즘 나는 내 생각을 바꾸었다. 오늘날 교육의 이 혼돈은 새로운 밀레니엄 시대의 새교육을 열기 위한 피치 못할 과정이라고…. 민주주의의 특성은 다양성이며, 세계를 지배하는 미국의 힘은 이 다양성에서부터 나온 것이라고…. 그렇게 치부하고 싶다.
혹자는 작금의 교육현실을 “19세기의 교사가 20세기의 교실에서 21세기의 아이들을 가르치고 있다”고 비판한다. 그 말도 수긍이 간다. 그러나 앞선 선진국들이 수백 년에 걸쳐서 해 온 일들을 수십 년만에 이루어낸 우리로서는 어쩔 수 없는 현실인지도 모른다. 다만 이 위기를 기회로 삼아 두 눈을 똑바로 뜨고 높은 파도를 의연히 넘어가는 지혜가 있어야 한다. 교육은 국가의 백년대계이며, 민족의 운명을 좌우하는 것이다. 다가오는 21세기를 예측만 할 것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창조해 나아가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