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년만에 고향을 찾은 박신도(44)씨는 보도블록으로 문턱이 생긴 마을길에 들어서자, 잘잘한 옛생각이 고무신에 담은 딱지처럼 모아진다.
세월이 참 빨리 흐른다. 서울 길동에 살림을 차리고 어머니까지 모시고 살다보니 용인쪽으로 향하는 발길은 뜸해지고, 더욱이 최근 몇 년간은 건축 내장재 사업이 어려운 터라 바쁘다는 핑계로 외면했던 게 벌써 3년 됐다.
기흥읍 신갈리 오산천을 끼고 도는 작은마을. 그새 안보이던 고가도로가 보이고 경전철사업 때문인지 곳곳에 신축건물이 들어섰다. 밤새 외워도 힘들 정도의 도로가 생겼고 기존 도로도 흰줄이 서너개는 더 그어져 있다.
도회지에 희망을 품고 떠날 때만해도 동네 어귀마다 왜 그리도 따분하던지, 지금 생각하면 웃음밖에 안 나온다. ‘고향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라는 동네 청년회이름의 현수막이 자꾸 자신을 손님처럼 대하는 것 같아 미안한 마음도 생긴다.
이번 추석은 건강이 나빠진 숙부님의 안부를 여쭙기 위해 왔다지만 내심 지치고 허약해진 자신을 추슬러 볼 요량이었다. 인생의 쉼터, 어머니의 자궁같은 고향을 찾는 일이야 말로 “그래 한번 해보자”라고 원기를 북돋우는 적격이 아니겠는가.
얘들과 아내를 데려오지 않은 것도 그런 생각에서였다.
연예인이 고향을 찾아 옛일을 체험하는 텔레비전 프로그램처럼 많은 것을 손과 발로 느껴보고 싶었다. 남이 알면 계면쩍지만. 사촌형님 반바지를 빌려 입고 형식이놈(동네친구)과 그 자식, 조카를 데리고 밤 따러 가는 길에 샛노랗게 물들은 논두렁에 걸터앉았다. 여린 솔잎만 골라 따다가 골패지게 말라버린 싸리 꽃을 훑기도 했다.
아람아람 벌어진 알밤을 주우면서 예전 일명 ‘홀짝’게임으로 애써 딴 알밤 반포대를 잃고 집 앞마당 섬돌에 씩씩거리며 앉아있던 때를 떠올렸다.
늦은 저녁참에 소주한잔 기울이면서 창문으로 덜컹 들어오는 달빛은 굳이 시인이 아니더라도 두어시간 술안주로 얘기하기에 충분했다.
“야 니가(형식) 고향을 지킬 줄 정말 몰랐어, 그렇게 가출하자고 꼬드긴 놈인데. 혜순이는 지금 뭐 하냐? 야! 니 자식놈 토실하더라. 우리 작은아버지하고 동네어른들 요즘도 화투하냐?” 줄거리도 없는 물음이 끊임없이 이어지고 대답없이 벙글벙글 웃기만 하는 술자리다.
2차로 공사장 네온사인 걸쳐놓은 치킨집에서 맥주한잔 건네면서 건설업주와 수의계약 취소된 얘기도 쭉 풀어놓고, 누구집 마당을 기준으로 개발계획이 세워졌다는 설명도 들었다. 막판에는 “야 임마 자주와. 얼마나 바쁘게 잘 산다고 그렇냐.” 꾸지람도 뒤따른다. 대충 늦었다 싶은 밤길에 뒤통수를 빤히 쳐다보는 달빛에 쫓겨 집으로 향하면서 언젠가 나만을 쫓아오는 달이 무서워 있는 힘껏 내달리던 그 길을 그리워했다. 턱을 치켜들고 바라보니 참 밝다.
다음날 숙취에 술자리에서 나누었던 몇몇 얘기는 또 잃어버렸지만, 사촌형수가 챙겨주는 다발다발 보따리만큼 마음속은 포만감이 가득했다. 교통방송 때문에 서둘러 차에 몸을 꾸겨 넣는 순간, 어느새 추억을 먹고 살아가는 자신의 존재가 백미러에 비친다. 나이가 들어가며 아버지를 닮아가는 것 같다.
다시 생활 터전으로 돌아가는 운전대를 토닥이며 `$$`Tie a Yellow Libbon Round The Old Oak Tree`$$`(오크나무에 노란리본을 매달아주오)라는 팝송을 가사도 모르면서 흥얼거렸다. 신도씨 눈주위엔 노란들판 일색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