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려한 색체 속에서 느껴지는 천진난만한 풍경들.
바로 고 장욱진 화백(1917-1990)의 전래동화 같은 친근하고 다정한 느낌의 작품들이 바로 그것이다.
문화관광부가 올 11월 ‘이달의 문화 인물’로 선정한 고 장욱진 화백은 이중섭, 박수근과 더불어 근,현대 미술사의 한 경지를 마련한 독보적인 존재이다.
그런 그의 작품 세계를 고스란히 느끼고 바라볼 수 있는 고 장욱진 화백의 고택이 마북리 244의 2번지에 위치해 있다.
그림은 화가의 삶의 투영도라 했나... 그의 작품에 등장하는 자그마한 오두막집, 감나무, 앙징맞은 정자 모두가 그의 집 속에 그대로 들어있다.
평소 좁은 공간을 좋아해 모든 것을 작게 만들었다는 그의 저택은 방문에서부터 모든 것이 한 평 밖에 되보이지 않게 작고 단아하다.
대문을 열고 들어서면 화백의 ㅁ자형 한옥 화실과 그 뒤로 보이는 유럽스타일의 아담한 양옥집이 그림처럼 존재하는 고택의 곳곳에는 그가 이른 새벽의 색채를 뽑아내던 작업실과 그가 머리를 기대고 잠을 자던 침실, 아내와 함께 나지막한 산을 바라보던 정자에 이르기까지 그의 손길이 그대로 숨쉬고 있다.
보통 타계한 예술인의 흔적을 찾아보기 어려운 우리나라의 현퓽?미루어 볼 때 생전에 있던 모습 그대로 남겨져 있기란 쉽지 않지만 그의 1남 4녀들은 ‘장욱진 미술문화재단’을 만들면서 까지 그 모습을 지켜나가고 있다.
더욱이 화백을 잊지 않고 찾아오는 손님들을 위해 잠시 머물며 숨을 돌릴 수 있도록 작은 한옥주택을 한 채 더 마련했고 창고로 쓰이던 방을 전시실로 꾸며 평소 먹 그림은 ‘붓장난’이라 하며 즐겨 그렸던 먹 그림을 20여점 전시해 놓고 직접 안내하고 있다.
장 화백의 장녀인 장경수씨는 “천식을 앓으셨던 아버지가 건강이 악화돼 신갈에 화실을 만드셨을 때 저 앞에 산을 보고 ‘나 여기 살란다’고 말씀하셨다”며 “지금은 개발로 인해 산이 반토막 났지만 처음에는 진달래 산이라고 부를 만치 아름다웠다”고 회상한다.
그러나 주변을 둘러보니 빽빽이 둘러싼 아파트들과 주변의 상가들이 고택을 마치 빌딩숲의 외딴섬처럼 부조화를 이루고 있다.
“이 고택을 지키기 위해 용인시에 문화재 지정을 요청한 적이 있다”는 경수씨는 “장욱진 화백이 누구냐고 묻는 시청 직원들의 무관심과 개발을 해야한다며 목소리를 높이는 주민들로 인해 고택을 지켜나가기가 쉽지 않다”고 토로한다.
특히 “고택을 찾아오고 싶(하는 관람객들을 위한 표지판 하나 없고 같은 동네의 주민들조차도 잘 알지 못해 그 주변을 몇 번이나 맴돌았다는 말을 들으면 속상한 마음을 감출수가 없다”며 안타까워 한다.
*관람문의:031)283-1911 매주 수,토,일 일반 공개, 선착순 예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