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린쿼터와 내 영화를 말한다

  • 등록 2007.02.01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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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lose-up/영화감독 정지영
사회상에 대한 문제의식 담는 것이 ‘정지영 표’ 영화

   
 
글·유성민 객원기자 | 사진·김호경 기자

# 용인에서 무협 영화 시나리오 작업 중
영화감독 정지영 씨를 만난 곳은 양지리조트 내 양지산장이었다. ‘산장’은 영화 JSA를 만든 MK픽처스의 작업실로 정 감독과 시나리오 작가가 함께 기거하며 시나리오를 쓰는 곳이라고 했다.

“용인에 온지 3년 됐어요. 일산에 있는 집보다 거의 여기서 지내다 보니 사람들이 다들 이젠 용인 사람 취급하더라고요. 하하. 오래 있으면서 그 땅 냄새를 맡고 그 땅에 친해지고 그러다보면 애착이 가는 것이죠. 그래서인지 알게 모르게 용인에 관심이 생겼어요. 용인에 와 보니 참 좋아요. 서울과 멀지도 않은데 조용하고 공기도 좋고. 무엇보다 일할 때는 외부와 차단된 기분이란 말이죠. 그러면서도 외부와 연락도 쉽고. 아침에 산책하기도 좋고.”

낮에도 고요한 산중에 감독과 시나리오 작가, 두 남자가 일하며 지내는 것을 생각하니 참 남다른 삶이다 싶다. 작업의 고독함 때문일까. 마루에는 애완견도 한 마리 있었다. 사람들을 경계하지는 않지만 다가서지도 않는 폼이 사람들이 이야기를 나눌땐 나서서는 안 된다는 걸 벌써 오랜 경험으로 알고 있는 듯하다.

‘안개는 여자처럼 속삭인다(1982)’이후 ‘남부군(1990)’, ‘하얀전쟁(1992)’, ‘헐리우드 키드의 생애(1994)’, ‘블랙잭(1997)’등 작품 활동을 꾸준히 해온 정지영 감독은 그 특유의 문제의식 때문에 사회적으로 이슈가 되기도 했고, 작품이 국내외에서 수상을 하면서 주목을 받아왔다. 그런 그가 1998년 ‘까’ 이후 작품을 내놓지 않았다.

“외국의 기자가 쓴 『김산의 아리랑』이라는 책이 있어요. 그 작품을 3년째 준비하고 있었는데 외국에서 촬영을 해야 하는데다 영화적 표현에 고민할 게 많아 지난 연말에 보류하기로 결정하고 다른 영화를 준비 중이에요.”
지금 그가 준비하는 작품은 고려시대를 배경으로 한 무협영화다. 자세한 내용은 밝히지 않았지만 올 여름이 가기 전에는 촬영을 시작할 것으로 계획하고 있다.

“이번 무협영화가 어떤 내용이냐구요? 시대는 고려시대지만 2000년대 오늘의 사회상을 얘기하지요. 이 무협 프로젝트는 10년 전부터 생각해 온 거에요. 물론 시간이 지나면서 조금씩 바뀌긴 했지만.”

# 영화에 담은 지배이데올로기에 대한 질문
월남전을 다룬 ‘하얀전쟁’이나 빨치산 이야기를 다룬 ‘남부군’을 비롯해 그의 작품들은 사회적 반향에서 보나 주제를 보나 다분히 자기만의 색깔이 있고, 정치적 도발성을 가지고 있다.

“색깔 구현을 위해 영화를 시작한 것은 아니에요. 문학 소년이었다가 영화가 좋아서 영화를 하게 된 거죠. 고1때 유현묵 감독의 ‘오발탄’이라는 영화를 봤어요. 그 전에 소설도 읽었고, 당시 집이 책방을 했는데 그때 마침 영화 관련한 책에서 그 시나리오를 봤어요. 그리고 나서 영화를 보고 나니까 어떤 이야기가 어떻게 영상으로 옮겨 영화화 되는구나, 그 작업을 감독이 하는 거구나 알고 영화에 뛰어들게 된 거죠.”

영화가 좋아 영화에 뛰어들었지만 그도 인정하듯 그는 영화 속에 자신이 갖고 있는 문제의식을 담아낸다.
“‘정 감독은 남부군에서부터 자기 길을 찾았다’는 얘길 많이 들어요. 그렇지만 제가 그전에 엉뚱한 작업을 했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남부군을 만들 때는 군사정권 시절이었고, 접근이 용이한 소재는 아니라서 많은 사람들이 우려를 했었지요. 그렇지만 전 책이 나왔는데 왜 영화가 못나오겠는가 하고 별 걱정이 없었어요. 우여곡절은 있었지만 그래도 다행히 작품으로 인정도 받고 흥행에도 성공했지요.”

사람들은 남부군부터 그를 인지했지만 그는 첫 영화부터 자신의 문제의식을 담았다고 말했다.
“감독으로 데뷔한 작품 ‘안개는 여자처럼 속삭인다’는 프랑스 추리소설을 원작으로 한건데 하고 싶은 이야기를 다 담지 못하고 변죽만 울리고 말았죠. 그리고 그 다음에 만든 ‘추억의 빛’이라는 작품은 흥행에는 실패했지만 그 영화에도 제가 가진 문제의식들이 잘 드러나 있다고 봐요. 하긴 그 영화뿐만 아니라 다른 영화들 속에도 문제의식은 다 녹아 있는 것 같아요.”

그 스스로가 말하는 ‘정지영 표’는 우리를 지배하는 이데올로기가 무엇인가, 그리고 그것을 생산해낸 자가 누구인가에 대한 끊임없는 문제제기다. 그는 우리도 모르게 우리의 삶을 조건 짓는 것, 그리고 집단무의식을 통해 은연중에 의식화되는 것들에 대해 문제제기를 한다고 했다. 영화에서만 아니라 요즈음의 그의 행보 역시 그런 일면을 보여준다.

# 미국의 문화종속국 될까 걱정
그는 ‘한미 FTA저지 범국민본부’의 ‘문화침략저지 및 스크린쿼터 사수 영화인대책위’ 공동위원장을 맡았다.

“오늘 서울에 갔다 왔어요. 문화침략 저지 및 스크린쿼터 사수와 관련해서 집회가 있었거든요. 우리나라 영화가 많이 발전했지만 지속 가능하기 위해서는 영화인과 정책 당국자가 합심해서 어떤 인프라가 필요한가 정책 연구를 해야 합니다. 스크린 쿼터를 축소했는데 이건 바보짓이에요. 21세기는 문화의 세기에요. 문화가 얼마나 중요한지 우리 정부가 제대로 인식 못하는 것은 아닌지 걱정스럽습니다. 한국영화가 발전할 수 있던 건 사전검열을 없앴던 것, 그리고 영화관 스스로 스크린 쿼터를 지키지 않으면 안된다는 인식이 있던 것, 그리고 21세기가 영상시대라는 인식을 가지고 정책적 배려를 했던 덕이에요. 헐리웃의 자본의 힘은 무섭습니다. 헐리우드 영화에 점령당해 자국 영화가 만들어지지 않거나 만들어져도 국민들에게 보여질 창구가 없어진 나라들이 많아요. 시장을 헐리웃 영화가 장악했기 때문이죠. 멕시코도 NAFTA 후 스크린쿼터가 없어지고 영화수준이 형편없이 떨어졌어요. 인도는 미국영화의 수입 제한국입니다. 때문에 자국 영화가 발달했죠. 경쟁력을 키우기 위해 개방을 해야 한다지만 경쟁력 있는 영화를 만드는 인도나 이란 모두 수입금지국입니다. 중국은 스크린쿼터가 우리보다 더 강하구요. 미국은 스크린뿐만 아니라 방송 쿼터도 개방하라고 하죠. 미국 요구대로 가다보면 영상문화는 미국화되고 그럼 자연스럽게 문화종속 국가가 될 수밖에 없어요. 일제시대에 일본은 3·1운동 이후 문화정책으로 지배했잖습니까. 그 나라의 영상문화를 없애면 종속국이 되는 건 쉽죠.”

스크린 쿼터에 대한 얘기가 나오자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야기가 쏟아진다.
“한미 FTA에 대한 광고에는 광개토대왕도 나오고 마치 세계로 뻗어나갈 것 같은 이미지를 내세웠지만 이만저만한 과장광고가 아니에요. 그에 비해 FTA 반대 CF에 대해서는 방송불가 판정을 내렸죠. 시대가 어느 시대인데…. 코미디에요.”
그는 집회를 위해 산장 밖으로 나서지만 “집회보다는 작품으로 사회참여를 할 수 있었음 한다”고 말하며 웃었다.

“영화가 많이 상업화 돼서 옛날과 달라졌어요. 옛날에는 영화를 만들거나 종사하고자 하는 젊은이들이 앞뒤 안보고 영화만 좋아서 뛰어들었는데 요즘은 영화가 주목을 받게 돼서 그런지 돈버는 사업이라고 생각하고 뛰어드는 사람들이 종종 있어요. 영화에서 돈은 따라오는 것이지 목표가 돼선 안돼요. 영화는 다른 산업과 다릅니다. 영화에 뚜렷한 자기철학을 가지고, 영화에 미쳐있는 감정으로 영화를 만나야 해요. 돈과 영화가 순서가 바뀌면 위험합니다. 상업영화가 양산되고 독립영화, 예술영화들이 계속 병행될 때 자극을 받고 새로운 것을 만들 수 있어요. 상업영화만 살아남으면 금새 매너리즘에 빠집니다. 영화 지망생들이 이런 점을 인식했으면 좋겠어요.”
용인신문 기자 webmaster@yongin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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