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냄새가 그리우면 용인 5일장으로 오라”

  • 등록 2007.02.01 00:00:00
크게보기

고려 때부터 내려와…암소X랄 말고 다 있어(?)
추억을 찾는 사람들의 색다른 관광지로 ‘부상’

   
 
“그곳에 가면 암소 X랄만 없고 모든 게 다 있다”.
고려시대부터 내려온 용인5일장, 그곳은 없는 게 없는 만물상이다. 고려 시대 김량이란 사람이 맨 처음 장을 열어 김량장이라고 불리워진 것이 용인 5일장의 유래라 한다.

오랜 역사와 함께 사람 사는 냄새가 진동하는 5일장의 매력 있는 삶의 현장으로 안내한다.

# 김량장의 유래
용인시는 본래 용구현(龍駒縣)과 처인현(處仁縣)을 합치고 용구에서 ‘용(龍)’자와 처인의 ‘인(仁)’자를 합쳐 용인현이라고 칭하다가 후에 양지군을 합쳐 오늘의 용인시가 되었다.

용인지방은 부족국가시대 이래 광주지방과 깊은 관계를 맺어왔다. 일찍이 온조왕이 하남 위례성에서 직위한 이후 계속 백제의 영토에 속했다.

용인지방이 용구현이란 명칭으로 기록상에 나타난 것은 서기 475년 고구려 장수왕 63년의 일이다. 이 해에 고구려 제20대 장수왕은 3만의 대군을 이끌고 남정하여 백제의 왕도인 한선을 점령하고 아단산성에서 백제 제 21대 개로왕을 죽였다. 이때 고구려는 새로운 점령지인 용인지방을 중앙 집권적 군현 제도에 따라 구성현으로 명명하고 자국의 영토로 귀속 시킨다.

용인에는 이미 이때부터 김령역이 있었으며 조선시대에도 김령역, 김령원이 있었다. 이 근처에 장이 섰으니 김령장이라고 불렀다. 뒤에 변음 되어 ‘김량장’이 되었다. 이것이 오늘 날의 용인장 유래라 전해진다.
또한 일설에 의하면 김량이라는 사람이 맨 처음 시장을 벌였다하여 그의 이름을 따 김량장이라고 불렀다고 한다. 조선왕조 영조 때의 ‘읍지’를 보면 김량장이라는 장시의 명칭이 보이고 있어 유래가 오래됨을 알리고 있다.

# 5일장은 만물상
용인 5일장은 매달 5일과 10일, 15일, 20일, 25일, 30일에 용인시 처인구 김량장동 중앙재래시장 인근 하천변을 중심으로 선다. 1995년에는 성남 모란 시장과 함께 전국에서 가장 큰 장으로 꼽혔었지만, 1999년부터 용인에 들어 온 대형마트 등으로 인해 쇠퇴의 길을 걷기도 했다.

그러나 최근 들어 5일장을 살리자는 운동과 함께 용인 지역 뿐 아니라 인근 도시주민들까지 추억을 찾아 이곳으로 몰리고 있다. 오죽했으면 하천변의 한 대형마트에서는 ‘5일장에 장을 보면 2배 적립’이라는 문구까지 내 걸었을까.

특히 용인 5일장은 만물상이라는 명칭에 걸맞게 규모 뿐 아니라 갖가지 먹을거리와 구경거리 그리고 그 옛날의 장의 모습을 엿볼 수 있어 색다른 즐거움을 찾는 이들에게 매력적인 관광지로 떠오르고 있다.

금학천변을 끼고 쭉 늘어선 노점상은 그 숫자를 헤아리기가 어렵다. 과일, 채소, 도장 파는 상인부터 호떡 아줌마, 솜사탕 아저씨, 놋그릇 판매상, 모종을 파는 할아버지까지 여기저기서 손님을 불러 모으는 소리에 귀가 멍멍하다.
이제는 계절에 관계없이 많은 외지인들도 찾고 있다. 용인 5일장은 옛 장터의 향수를 느낄 수 있는 토산품 말고도 갖가지 먹을거리와 볼거리가 풍부하다. 꼼꼼하게 살펴보면 예전에 사라진 희귀한 물품도 살 수 있다.

옛날 대장간의 농기구, 검정고무신, 짚신, 황기, 옥수수술, 정력에 좋다는 복분자술, 마른 산나물 등을 살 수 있고, 녹두로 만든 각종 음식과 막걸리, 소주 한잔과 함께 돼지의 부속물을 석쇠에 구운 소금간 구이, 생선 구이, 즉석에서 구워지는 고소한 김, 집에서 담근 된장과 고추장, 설탕 듬뿍 뿌려진 꽈배기, 김이 모락모락 나는 흰 두부, 그 구수한 냄새가 그냥 지나치기가 힘들다.

# 추억이 새록새록
용인 5일장은 봄이면 전국 각지에서 채집된 냉이, 달래, 참나물, 곰취 등의 각종 산나물이 봄의 미각을 자극하고, 여름철이면 찰옥수수와 그 옛날 향수에 젖어 먹던 냉차 아저씨도 만날 수 있다. 겨울이면 현장에서 맷돌로 바로 갈아 거짓말 조금 보태 자동차 바퀴만한 빈대떡이 붙여진다.

값싼 옷가지들과 가방, 이불, 그리고 만화 시리즈가 그려진 아이들 운동화, 옆에는 아동복이 산만큼 쌓여 있다. 사람이 많이 모였으니 풍악도 울린다. 각설이 분장을 한 엿장수의 두 손에서는 맛 깔 나는 가위 소리가 연신 들린다. 그 놈에 엿, 맛을 안 봐도 달콤하다. 이쯤 되면 장 구경에 막걸리 한사발을 걸친 할아버지가 덩실 덩실 춤을 추는 모습이 눈에 띤다.

용인 5일장이 서면 그동안 어렵게 상점을 운영해 오던 중앙재래시장도 활기를 띤다.
수원 화성에서 지난달 25일 용인 5일장을 찾은 한 주부를 만났다. 주부 옆에는 5살짜리 여자아이와 1학년의 남자 아이가 엄마 뒤를 바짝 따랐다. “용인에서 자라 시집을 수원으로 갔는데 어렸을 적 엄마 손을 잡고 다녔던 5일장이 생각나 방학을 맞은 아이들과 함께 찾았다”며 “추억 속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 용인장이 정겹고 아이들에게는 신기하기만한 5일장을 보여 줄 수 있어 좋다”고 말한다.

장 구경을 마치고 배고픔을 달래고자 중앙재래시장 순대골목으로 향한다. 그녀는 “역시 용인에 오면 순대국을 먹어야 한다”며 입맛을 다신다.

연신 엄마 옷자락을 잡은 5살짜리 꼬마는 용인장의 모든 것이 신기하기만 하다. 엄마의 어릴 적 추억이 고스란히 아이에게 전해진다.

용인장은 오후 5시쯤이면 파장에 접어든다. 여기에 또 하나의 매력이 숨어 있다. 장이 파장할 때 쯤 넉살 좋은 아줌마들은 노점의 물건들을 반값에도 살수있다. “말만 잘 하면….”

# 새로운 관광코스
수년을 지나는 동안 용인장은 적잖은 아픔을 겪어 오기도 했다.
대형마트의 출현으로 사양길에 접어들어 회생이 불가능 하다고 말하는 이도 있었고 특정 집단의 자릿세 징수 문제로 한동안 시끄럽기도 했다.

지역 주민이 아닌 타지의 상인들이 노점상을 죄다 차지해 지역 경제에 악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의견 등은 지금도 풀어야 할 숙제로 남아 있다.

그러나 용인장의 명성은 수도권의 여러 지역에 잘 알려져 있다. 옛 모습을 아직까지 간직하고 있는 탓이다. 백화점과 대형 할인마트에 길들여진 세대에는 옛날 우리의 문화를 엿 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고 시골 5일장의 풍요와 정겨움을 간직하고 있는 세대에는 추억을 선사한다.

현대화로 새롭게 탈바꿈을 시도하고 있는 중앙동 재래시장과 함께 옛 모습을 그대로 간직한 용인 5일장을 강원도 정선의 풍물 5일장처럼 새로운 관광코스로 부각 시키면 어떨까.
김미숙 기자 kiss1204h@yonginnews.com
Copyright @2009 용인신문사 Corp.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용인신문ⓒ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지삼로 590번길(CMC빌딩 307호)
사업자등록번호 : 135-81-21348 | 등록일자 : 1992년 12월 3일
발행인/편집인 : 김종경 | 대표전화 : 031-336-3133 | 팩스 : 031-336-3132
등록번호:경기,아51360 | 등록연월일:2016년 2월 12일 | 제호:용인신문
청소년보호책임자:박기현 | ISSN : 2636-0152
Copyright ⓒ 2009 용인신문사. All rights reserved.
mail to yonginnews@daum.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