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조폭은 어디에 ‘서식’하는가

  • 등록 2007.02.01 00:00:00
크게보기

Society/국민들이 조폭에 관용적인 이유
폭력조직원 업무만족도 보통·만족 80%

   
 
글·프레시안 전홍기혜 기자

형사정책연구원이 1월 29일 한국의 폭력조직에 대한 광범위한 연구보고서를 내놓았다. 대검찰청이 의뢰해 지난 1년간 대학교수뿐 아니라 검찰과 경찰이 직접 연구에 참여하고, 전국 교도소 6곳에 수감된 서로 다른 폭력조직의 조직원 109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와 면접조사를 실시하는 등 상당한 공을 들여 완성한 이 방대한 분량의 실태보고서는 언론의 주목을 받았다.

# 폭력조직의 ‘서식’ 환경?
전국에 걸쳐 383개의 폭력조직이 활동하고, 폭력조직 가담인원이 1만 2056명에 달하며, 조직폭력원들의 평균 월수입이 400만원이나 되고, 업무만족도에서도 80% 가량이 ‘보통’과 ‘만족한다’고 답해 경찰보다 높은 것으로 조사되는 등 보고서 내용도 충격적이었다.

하지만 이 방대한 보고서 중에서 기자의 눈을 잡아끈 것은 ‘폭력조직의 서식환경’이라는 한 보고서의 제목이었다. 표준 국어대사전을 찾아보면 서식(棲息)이라는 말은 동물에게 쓰는 말이다. 경찰 관계자는 이에 대해 ‘관행적인 표현’이라고 해명했다.

폭력조직(원)이 ‘부적절한’ 조직(사람)이므로 ‘부적절한’ 용어를 쓰는 게 큰 문제냐고 따지면 크게 항변할 명분은 없다. 그러나 이것 자체가 폭력조직을 다루는 기관들의 ‘부적절한’ 인식을 보여주는 것 같아 안타깝다.

# 국민들이 폭력조직에 관용적인가
또 이 보고서에서 분석한 조폭들의 ‘서식’ 환경에 대해서도 곰곰히 생각해볼 대목이 있다. 대한민국의 폭력조직이 근절되지 않는 이유 중 하나가 국민들이 폭력조직을 비호하고 공존공생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과연 대한민국 국민들은 폭력조직에 관용적일까? 그렇다면 그 이유는 뭘까?

이 보고서에 따르면 전국 성인남녀 2056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 응답자의 15.0%가 ‘폭력조직의 반사회성을 인정하면서도 경우에 따라서는 사회적으로 쓸모가 있을 때도 있다’고 답했다. 또 10.7%는 ‘법대로 할 경우 시간과 비용이 들고 만족스런 결과를 얻지 못한다면 문제 해결을 위해 조직폭력배를 이용할 의향이 있다’고 답했다. 이같은 조사결과를 근거로 보고서는 “우리사회에 폭력조직이 서식하는 데 필요한 정서적 기반과 더불어 조직폭력에 대한 사회적 수요가 존재한다”고 해석했다.

하지만 이 조사에서 ‘민사나 형사사건을 해결하기 위해 조직폭력배의 힘을 빌리거나 부탁해본 경험이 있다’는 응답은 0.8%에 불과했다. 조직폭력배를 동원하고 싶은 마음과 달리 실행에 옮긴 경우는 극히 일부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 법적차원에서 살아남는 소득원이 있다?
또 이 보고서는 조사대상자 가운데 실제 조직폭력 피해를 당한 경험이 있는 137명 중 경찰에 신고한 경우가 29.2%에 그친다는 사실도 국민들의 관용적 태도를 입증하는 예로 제시했다. 피해를 당하고도 신고하지 않는 것은 “조직폭력배들이 검거를 피할 수 있게 해준다는 점에서 폭력조직을 적극 비호하는 행동과 사실상 다를 바가 없다”는 것이다.

하지만 낮은 신고율은 △증거확보 등 신고절차의 까다로움 △조직폭력에 대한 관대한 처벌 △보복 등 2차 피해에 대한 두려움 등 제도적인 측면에 기인한 것이다. ‘범인이 아는 사람이어서’ 조직폭력배를 비호하기 위한 것이라는 응답은 6.1%에 그쳤다.

“국민들이 폭력조직에 관용적”이라는 것은 정서적 차원에 국한된 설명에 그치거나 조직폭력을 다루는 집단인 경찰과 검찰의 막연한 생각에 불과한 것이 아닐까.

오히려 일반 국민들은 조직폭력이 해결되지 않는 이유로 수사기관의 단속 소홀, 조직폭력에 대한 처벌의 관대성, 단속법규의 불완전성 등을 문제로 지적했다. 최근 사회적 이슈로 제기된 사행성 성인오락실 문제에서도 알 수 있듯 폭력조직이 불법적인 수준을 넘어 합법적 차원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소득원이 존재한다는 점도 지적돼야 할 대목이다. 또 일반국민들의 80%가 ‘조직폭력의 배후에 비호세력이 있어서 해결되지 않는다’고 답했다. 이는 경찰관들의 70%도 공감한 문제다. 반면 검찰의 전담요원 210명 가운데에서는 9.5%만이 폭력조직 비호세력의 존재를 인정했다.

# 누가 ‘국민의 편’인가?
마지막으로 각종 영화, 드라마 등을 통해 조직폭력배가 미화되고 이를 국민들이 거부감 없이 받아들이는 것을 어떻게 봐야 하나. 대한민국 국민들이 폭력에 대해 관용적이고 정의감이 부족해서인가. 물론 위계질서가 뚜렷한 남성중심사회인 대한민국 사회가 폭력에 대한 감수성이 떨어진다는 것은 사실이다. 의리 등 폭력조직이 유지되는 몇 가지 ‘원칙’에 대해 사회적인 평가가 높은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무엇보다 중요하게 지적돼야 할 점은 ‘과연 대한민국 사회가 정의로운가’라는 점이다. 일반 국민들은 아니라고 보고 있는 것 같다. 경찰, 검찰, 심지어 언론까지도 조폭과 마찬가지로 정의롭지 못하고 자신들의 집단적 이익을 우선시하고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조폭에 대한 정서적 거부감이 적은 것이 아닐까. 사회적 약자인 국민들이 보기엔 조폭이나 경찰이나 언론이나 ‘내 편’이 아니긴 마찬가지라는 것이다.
용인신문 기자 webmaster@yonginnews.com
Copyright @2009 용인신문사 Corp.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용인신문ⓒ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지삼로 590번길(CMC빌딩 307호)
사업자등록번호 : 135-81-21348 | 등록일자 : 1992년 12월 3일
발행인/편집인 : 김종경 | 대표전화 : 031-336-3133 | 팩스 : 031-336-3132
등록번호:경기,아51360 | 등록연월일:2016년 2월 12일 | 제호:용인신문
청소년보호책임자:박기현 | ISSN : 2636-0152
Copyright ⓒ 2009 용인신문사. All rights reserved.
mail to yonginnews@daum.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