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속 DJ ‘객석’에서 만나다

  • 등록 2007.05.01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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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년대 음악다방 DJ 기억하세요?
Close-up | 음악 까페 ‘객석’과 DJ 정민

   
 
용인시 처인구청 근처에 자리 잡은 음악 까페 ‘객석’은 아담하고 조용한 건물 2층에 자리하고 있었다. 소문을 듣고 찾은 ‘객석’은 음악이 나오고 손님들이 삼삼오오 앉아 이야기를 나누는 것만 보면 여느 커피숍과 별다른 점이 없는 듯했지만 까페 한 켠에 있는 정리된 음반들과 컴퓨터, 헤드셋, 마이크가 이곳이 평범한 까페가 아님을 알려준다.

까페 객석의 주인이자 DJ인 정민 씨는 2년 전 용인 구 시가지에 음악 까페 ‘객석’을 열었다. DJ가 있는 음악 까페는 1970~80년대 젊은이들의 문화로 손꼽을 수 있을 만큼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았지만 어느새 추억 속으로 사라졌다. 그런데 거의 20년 만에 용인시내 한 귀퉁이에서 다시 새롭게 싹트고 있었다.

스피커에서는 인터넷 사이트에서 개설한 음악방송이 나오고 있었다. 아마 예전의 DJ가 있는 음악다방과 다른 풍경이 있다면 DJ를 보면서 CJ(Cyber Jockey)로도 활동하는 것일 것이다. 정민 씨는 자신이 CJ로 활동하는 시간에는 까페와 인터넷에 동시에 음악을 소개한다. 인터넷 음악방송을 통해 국내 또는 세계의 여러 지역에 있는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음악을 소개하는 한편 까페에 온 손님들의 이야기나 신청곡을 틀어주는 것이다. 오프라인과 온라인 공간을 모두 활용하고 접목한 현대판 DJ의 모습이다.

# 용인 최초의 DJ
DJ 정민 씨가 용인에서 음악다방 DJ로 일하기 시작한 것은 1979년이었다. 수원에서 DJ를 하던 그는 용인에 우연히 왔다가 처음 생긴 음악다방 DJ를 하게 됐다. 1979년부터 1년간 용인에서 활동하다가 군 입대를 했고, 제대 후 다시 용인에서 일했다. 지금 용인사거리 부근에서 ‘마돈나 경양식’, ‘마로니에 커피숍’, ‘낮은 목소리’, ‘추억 만들기’ 등 음악다방과 경양식집이 그가 일했던 곳이다.

그러다 1990년 초 혼자 DJ를 하며 가게를 운영하는 것이 벅차 DJ 일을 접고 다른 사업에 뛰어들기도 하고 다른 직업을 갖기도 했다. 그런 중에도 새로운 장르인 뉴에이지와 크로스오버 음악 등 새로운 노래를 수집하는 일을 빼놓지 않았다.

나이가 들면서 하고 싶은 일에 대한 생각이 많아진 정민 씨는 2005년 1월 용인에 음악 까페를 열었다. 거의 20년 만에 여는 음악 까페지만 입소문만으로 손님들이 찾아든다. 음악 까페는 2년 전에 열었지만 인터넷에서 음악방송을 한 것은 5~6년이 됐다. 지금은 한 사이트에서 ‘수원경기 3040’라는 음악방송의 한 코너를 맡고 있다.
“손님들 중에 예전에 제가 음악다방에서 일할 때 오셨던 분들도 오시고 모임들을 많이 하세요. 예전과 달라진 점이 있다면 예전에는 예쁜 그림엽서에 신청곡을 적기도 하고 크로버를 붙여서 내는 분들도 있었는데 요즘은 그런 사람들이 거의 없는 정도죠.”

신청한 음악을 3곡만 보면 그 사람의 성격과 음악적 소양을 아는 것은 물론 그는 음악 소리가 둔탁한지 맑은지 만으로도 밖의 날씨를 짐작 할 수 있다고 한다.

“신청한 종이를 글씨체별로 모아두면서 손님의 특징을 적어두었죠. 손님 이름은 몰라도 어떤 손님이 어떤 음악을 좋아하는지 기억해 두곤 했어요. 손님이 다시 오시면 곡을 신청하지 않아도 제가 알아서 음악들을 틀어드리곤 했죠.”
굳이 옛 일을 들추지 않아도 지금도 차곡차곡 쌓인 신청곡 쪽지들에는 사람들의 마음이 묻어난다.
‘전쟁 같은 한 주를 보내고 휴식과 평온을 찾고 싶어 객석을 찾았다.’

‘스펠 틀려도 괜찮죠? 이 노래가 시끄러우면 대신 이걸 틀어주세요.’
어떤 쪽지에는 음악 신청보다는 개인적인 느낌이나 감정이 주로 적혀있고, 노래 제목들만 나열한 것도 있다. 신청곡 쪽지들은 단순히 음악을 신청하는 것이 아니라 DJ를 통해 음악과 소통하기를 원하는 마음을 담았고 또 개인의 감정과 사사로운 이야기들을 털어 놓는 창구같았다. 쌓이는 신청곡 쪽지만큼 DJ로 일하면서 겪은 일들도 다양하다.

“템프테이션스(Temptations)라는 그룹이 부른 메리앤(Mary ann)이라는, 처절한 절규같은 노래가 있어요. 많이 알려지지 않아서 DJ 경력이 7년 정도는 돼야 알만한 노래죠. 근데 그 노래를 신청한 여자분이 있었어요. 음악이 나가는 동안 머리를 쥐어뜯다시피 하면서 들으시더군요. 그 노래가 정말 필요한 분 같아서 다른 분들께 양해를 구하고 그 곡을 30분이나 튼 적이 있어요. 음악은 마음에 담을 수 있어야 하니까요. 음악은 귀로 듣는 게 아니고 자기가 그 속에 들어가야 하는 거라고 생각해요.”

# 신청곡 속에는 사연도 많아
인터넷에서 음악방송을 할 때는 70세가 넘은 분도 오고 3살짜리가 아이가 들어오기도 한다.
“원주에 사는 3살짜리 아이가 제 방송을 좋아해요. 그 아이 엄마가 제 방송을 들으니까 같이 듣게 된 거죠. 팝송 중에서 ‘Seasons in the sun’이라는 노래를 좋아해요. 인생의 황혼기에서 한 남자가 추억을 하듯 그리는 이야기에요. 가사가 ‘We had joy’라고 하는 부분이 있는데 얘가 이걸 ‘이햇죠’라고 듣고 이햇죠, 이햇죠 노래를 따라하고 그 노래를 틀어달라고 한다는 거에요. 아이가 대화창에 들어오면 컴퓨터 자판을 몰라 아무거나 누르기도 하죠. 대화창에 계신 분들이 무슨 말인가 의아해 하시면 제가 아이가 들어와서 인사하는 거라고 설명해요.”

음악 신청을 받다보면 고민스러운 경우도 꽤 있다. 결혼 축하를 하겠다는 사람들이 신청한 곡이 “나는 가네 원치 않는 사람에게로~”이라는 내용의 곡인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 제목만으로 노래를 판단하고 신청하는 경우인데, 그럴 때는 판에 흠집이 났다고 얘기하고 다른 음악을 틀어준다. 또 어떤 노래는 작곡자를 포함해 87명이나 그 노래를 들으며 자살했기 때문에 신청이 들어와도 여러 사람들이 와서 함께 이야기를 나누는 경우가 아니면 잘 틀어주지 않는다. 고엽제 환자에게 희망을 가지라는 내용의 ‘로즈 가든’도 제목만으로 오해하는 사람들이 많다고. “노래를 정확히 알아야죠. DJ라는 일이 그냥 신청한 노래를 틀어주기만 하지 않습니다. 사람들이 노래를 잘 이해하고 마음으로 받아들일 수 있도록, 좋은 노래를 소개하기도 하고 노래의 의미를 얘기하기도 하면서 노래와 사람들의 다리 역할을 하는 거죠.”

소설을 쓰고 싶었던 그가 학창 시절 “너는 네 글을 책임질 수 있냐”는 형의 질문에 많은 고민을 안게 됐고, 글로 인해 상처 받을 수 있는 사람이 있을 것이라는 생각에 글을 접었다. 그리고 DJ로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그냥 음악을 틀어 주는게 아니라 공부해서 전달해야겠다고 생각하게 됐다.
그래서 그는 매일 공부를 빼놓지 않는다. 팝송을 주로 소개하지만 가요도 소개하고 세미클래식이나 크로스오버, 러시아나 일본, 중국, 칠레 등 쉽게 접하기 어려운 곡을 소개하기도 하는데 철저히 공부하고 소개한다.

영어노래가 아닌 경우에는 가사 내용을 알기 위해 번역기를 이용해 영어로 번역하고 다시 그 내용을 한글로 번역하면서 파악한다. 번역기를 사용하면 어순이나 내용들이 잘 전달되지 않아 여러 번 읽으면서 내용 추론을 반복해야하기 때문에 노래연구에 쉴 틈이 없다. 그 덕에 DJ에게 필수적인 이야깃거리는 풍족한 편이다.

# 월 1회 누구나 참가하는 음악회
이곳 객석이 특별한 것은 DJ가 있는 음악 까페라는 것만은 아니다. 그는 까페에서 직접 하모니카 연주를 하기도 하고 한 달에 한 번은 이곳에서 객석 음악회도 연다. 누구든 기타를 직접 연주하며 노래를 부를 수 있는 자리다.
누구나 참석 가능하지만 술도 안 되고, 핸드폰 통화도 금지다. 음악을 감상하는 분위기를 조성하기 위해서다. 객석 음악회는 인터넷 다음 사이트에 ‘까페 객석 모임’의 운영진들이 정한 날에 열린다. 음악회 일정이 잡히면 정민씨는 가게 앞에 공고를 붙인다.

DJ가 요즘에 무슨 소용이냐고, 인터넷에서 자기가 듣고 싶은 음악을 선택해서 들으면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막상 그 수많은 음악들 가운데 어떤 것이 마음에 드는지는 들어봐야 아는 것이고, 음악에 대한 정보가 없다면 더욱 막막할 것이다.

“아직 용인에서 혼자 음악방송을 하는 곳은 없는 것으로 알고 있어요. 혼자 24시간 방송을 운영하기는 쉽지 않죠. 그래도 음악 경험이 있는 사람들 둘 셋이 뜻을 모아서 12시간이라도 방송을 할 수 있으면 좋겠어요. 서버를 두고 용인 지역 사람들이 이야기를 나누고 신청 음악을 들을 수 있는 음악방송이 있으면 해요.”
DJ를 하는 데 힘든 점이 없는지, 후회한 적은 없는지 물어보았다.

“아내에게 미안하죠. 제가 DJ를 보는 만큼 혼자 가게 일을 많이 해야 하니까. 늘 음악에만 매달려 있어서 다른 사람들만큼 사회에 대한 눈이 밝지 못하다는 게 아쉬운 점이라고 할까요. 그래도 후회는 없어요. 힘든 것은 제 능력에 대한 것이죠. 주어지는 여건 때문에 힘들진 않아요. 제가 선택한 것이니까요.”.

글·유성민 객원기자 | 사진·김호경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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