곁눈질만 해줘도 좋은 넉넉한 나팔꽃

  • 등록 2007.09.01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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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부집에서 나팔꽃을 멀리 해야하는 ‘바람둥이꽃’
박 시영의 들꽃 이야기 / 나팔꽃

   
 
나팔꽃 , 듣기만 해도 얼마나 정감이가고 포근한 우리 일상의 꽃입니까?
메꽃하고 나팔꽃하고 구별을 어떻게 하는 것인가에 대한 질문을 자주 듣습니다. 우리가 일상에서 보고 있는 나팔꽃이나 메꽃 모두 같아 보이는 것이 사실이구요. 또 족보상으로도 메꽃과에 한 줄기를 타고 내려오고 있습니다. 나팔꽃은 한해살이 덩굴식물이고, 메꽃은 여러해살이 덩굴식물이 아주 다른 점이고, 메꽃은 땅속에 뿌리줄기가 길게 뻗어있어 여러 해를 포기 나누기로 번식을 지속적으로 하지요.

허나 나팔꽃은 한해살이로서 까만 씨의 열매로 번식을 합니다. 씨를 받아 놓을 경우에는 봄에 땅에다 뿌려주면 좋지요. 꽃의 겉모양을 잘 구분하기가 어려우시다구요? 그렇죠. 그러나 하루 종일 태양과 맞서 싸우고 있는 놈이 메꽃이고, 이른 새벽 부지런을 떨고 일어나 싱싱한 모습으로 천연의 색을 발산하고는 정오가 올 무렵부터 기력을 상실해 합죽이 입을 해갖고서는 꼭 다물고 있는 놈이 나팔꽃입니다. 이 나팔꽃은 밤의 어둠을 축적해두었다가 이른 새벽 서너 시 경쯤에서부터 일어날 채비를 하는데, 어둠이 얼마큼 자기 양에 차지 않으면 다음날 심술스레 꽃을 열지 않습니다. 어둠을 먹고 자라는 꽃이라 해도 어울리는 꽃이지요. 밤의 음기를 자신의 가슴에 채울 만큼 채워야 낮에 꽃 살을 여는 바람둥이 꽃. 그랬다가 폭발하는 아침의 강한 태양을 정면으로 맞이하며 찢어질 듯 펼친 꽃 살 속으로 태양을 담아 남색, 진 보라색, 진자주색, 분홍색, 아주하얀색의 마음으로 자기의 몫을 다 하지요. 나팔꽃은 색이 다양하나 메꽃은 흰색과 분홍색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아침이슬을 발등에 싣고 밭둑이나 산길을 걸을라치면 생생히 쳐다보는 나팔꽃들을 보며 자연의 한 획에 정말 감탄하지 않을 수 없지요. 지금 나팔꽃이라 하는 꽃의 색을 진정 보셨습니까? 시계 반대 방향으로 해서 더 높게 올라갈 만큼 올라가서 터트려 버린 자지러 버릴 듯한 진보라의 진작 색깔을 보셨나요? 눈망울이 최면 되여 뱅글뱅글 돌아버릴 듯한 진자주색의 진짜 색을 보셨나요? 이게 하얀색이더라고요. 나팔꽃의 하얀 꽃이 진짜 하얀색이더라고요. 우리의 주변에 원색의 자연색이 가까이 와있음에도 불구하고 내 가슴으로 담아내지 못하는 현실의 마음. 내 마음에 담아보지 못하고 메마른 마음 그대로로 일상을 달리고 있는 현실의 마음. 잠시의 마음으로 자연을 곁눈질 해가며 살아갔으면 좋을 텐데요. 좋은 건 다 아는 건데. 시방 우리는 그 계절의 꽃들과 꼭 만나 한번의 대화를 갖도록 노력해야 할 것입니다. 심성고운 색깔을 눈에 담아 아름다운 세상으로만 보이도록 그 계절에 그 꽃들과 만나서 이야기 주고받도록 해야 하는 것인데. 그래야만 우리 이웃은 날로 정겹고, 어린이는 어른을 제대로 볼 수 있는 눈망울로 적셔져 커갈 것입니다, 나팔꽃을 보시면 됩니다. 나팔꽃만 보시면 사람이 되게 돼 있는 것이고. 나팔꽃을 보시면 나팔꽃이 될 수 있습니다. 나팔꽃을 보시면 우주여행도 저절로 할 수 있습니다.

진자주색의 꽃 속을 무심코 들여다보시면 큰일 납니다. 어느새 어디론가 빙빙 돌려져 우주의 한복판으로 휘 내 몰아 버리니까요. 깜짝할 사이 원색의 본능 저편으로 굴러 떨어지니까요. 나팔꽃 안에 갇혀 원색의 탕에 굴러 떨어져 눈을 차라리 감아 버리려 해도 이젠 마음이 열려 초자연의 세상을 한껏 돌아다니며 보게 되지요. 그러면서 묵었던 삶의 찌꺼기들은 파편처럼 떨어져 나아가구요. 세상을 잊을 즈음 나팔꽃은 나를 저절로 내 자리에 내려놓습니다. 하얀 마음으로 내가 돌아오지요. 실제 상황입니다 사실 그렇고 나팔꽃 안에는 내 태초의 모습이 있고, 내 자연의 처음 모습이 있어 좋으니 한번쯤 다녀가시길 소원합니다. 정말 이해 할 수 없는 자연의 조화에 눈이 그만 휘둥그레지죠.

내 맘에 들어 짙은 보라색 꽃씨를 그 줄기에서 채취해 이듬해 씨를 뿌리고 보라색 꽃을 기대했다가는 큰 낭패를 볼 수 있습니다. 분명 진 보라색 줄기에서 꽃씨를 받아서 심었는데 어이해 진자색이나, 남색의 꽃이 나오는 것이냐 말입니까. 그거 참 알 수 없는 노릇이죠. 무엇으로 설명할 수 없어 이내 나팔꽃에 하나 더 부쳐진 고상한 이름이 바람둥이 꽃이랍니다. 어느 결에 새 씨앗을 보는 훌륭한 솜씨에 사람들은 그리 놀려 대지요. 바람둥이 꽃이라고. 예전에는 그래서 혼자된 과부의 집에서는 이 나팔꽃을 멀리 하였답니다. 그래서 이려나 나팔꽃은 남자의 꽃이라 하지요, 하나 더 사내랑 닮은 것은 냄새를 피울 줄 모르죠. 향이 없지요. 무뚝뚝하게 가슴 저 깊은 곳에서 나오는 진정한 두꺼운 색깔을 보일 줄만 알지 더 이상 여우 짓은 못 떨지요. 그러니 향기도 없을 수밖에. 남자의 꽃이라는 것은 사실은 이래서 일 것입니다.

예쁜 아내를 곁에 두고 그림을 아주 잘 그리는 화공이 있었습니다. 아내의 미모가 문밖으로 새여 나간 지 얼마 후. 마을 원님의 귀에 드디어 소식이 도착하고, 안달 박달이 난 고을 원님은 그를 감옥에 넣어 회유를 하기 시작하게 되였던 것이었습니다. 민초로서의 분을 그림으로 삭이며 아내를 기다리는 화공은 더욱더 아내의 모습을 그림으로 사실처럼 그려냈습니다. 착한 화공은 금방 돌아 올 줄 알았던 예쁜 아내가 벌써 몇 달을 방을 비우니 허전하기 이루 말할 수 없을 터. 몸과 마음이 타들어가기 시작했습니다.

어느 날 화공은 결심을 하였습니다. 그동안 그렸던 아내의 그림을 갖고 감옥 근처로 가서 파 묻어놓고 오기로. 그리고를 여러 해. 한편 아내는 밤마다 남편의 모습이 꿈마다 나와 걱정스런 모습으로 왔다 가고 하는 것을 기이 여겼습니다. 어느 새벽녘 기력이 쇄한 화공은 감옥 담장 밑에서 한을 남기고 저승으로 길을 떠났습니다. 뒤숭숭한 꿈자리를 꿀 때마다 창 너머 담장을 보던 어느 한날 아내는 한 송이 덩굴이 뻗어 있는 초라한 덩굴 꽃을 보게 되였습니다. 아내는 이내 이상한 생각이 들었습니다. 무슨 꽃이 이 높은 담장을 기어올라 새벽이면 활짝 피었다 해가 뜨면 사라지는 것을 이상히 여겼습니다. 남의 눈에 띌세라 이른 새벽 그곳은 활짝 피어 아내의 모습을 꽃 속에 담고는 해가 뜨면 꽃잎을 닫아버리고 마는 화공의 심정을 아내는 눈치 챘으려니 이내 아내도 명을 달리하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그곳에서도 같은 넝쿨 줄기가 나와 이내 줄기가 한 덩굴이 되여 칭칭 감겨져 자라고 있었으니. 지금도 나팔꽃은 자기가 자기줄기를 칭칭 감고 담장을 올라가는 버릇이 있습니다. 어둠을 충분히 머금은 채로 있다가 새벽이면 힘찬 모습 보이다가 햇빛을 받으면서 꽃 살을 닫아 버리는 바람둥이 꽃. 사실 애매한 별명을 갖게도 된 것이지요.

나팔꽃씨는 견우자라 하걸랑요. 얼마나 귀하고 유명한 약재인지 그 옛날에는 소 한 마리와 맞바꾸었다고 하여 견우자, 혹은 소가 끄는 마차에 나팔꽃을 한가득 싣고 다니면서 팔았다 해서 견우자라 하는데 지금의 시각으로는 잘 견줄 수 없는 것이고. 그래서인지 한방에서는 꼭 필요로 하는 주요 약재로 쓰였다 합니다. 흑 축, 백 축으로 씨가 달리는데 오랜 체증으로 뱃속에 덩어리가 생긴 병에 이것을 약재로 쓰면 아주 좋은 효험을 얻는다 하였고, 민방에서는 대소변을 유쾌하게 통하게 한다 하였습니다. 생생한 나팔꽃 줄기를 밑에서부터 한 뼘 정도 올라오게 잘라서 잘 말려 두었다가 겨울철 동상에 걸렸을 때 요긴하게 쓰지요. 달인 물로 동상부위를 따뜻하게 감싸주면 되지요. 곁에 내 곁에는 정말로 소중한 야생화가 말없이 있습니다. 잠시의 마음으로 눈길 주시면 우리의 마음이 한결 고와지고 여유로워 넉넉해 질 것입니다. 모든 게 다 넉넉해지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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