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의 옷 만들기는 내일도 계속 된다

  • 등록 2007.10.01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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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살때 시작…용인상권과 맞춤옷의 산증인
| 삶의 뿌리를 찾아서 맞춤복 50년 한 길 문화라사 김종학씨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고 했다. 그런데 한 길만 50년을 걸어온 사람이 있다. 강산이 변해도 몇 번은 변했을 시간동안 맞춤복 만들기에만 전념한 김종학 씨(63). 평생직장이라는 말이 옛 말이 된 요즘엔 만나기 어려운 얘기다.

처인구청 건너편에서 시장 쪽으로 걷다보면 만날 수 있는 ‘문화라사’. 크지 않은 점포라 관심이 없으면 무심히 지나칠 수 있는 곳이지만 김종학 씨는 이 자리에서만 30년째 일하고 있다.

“저쪽 백암에서 65년에 처음 양장점 개업을 했었고, 그곳에서 2년 일하다가 군대를 다녀온 뒤엔 70년에 용인시장 안에서 가게를 열었어요. 76년에 현 시장약국 자리로 옮겼는데 78년에 지금 이 자리로 옮겨서 계속하고 있어요. 용인에서만 40년 맞춤복을 하고 있는 셈이죠.”

1945년 해방둥이로 용인 김량장동에서 태어났다는 그는 군대 3년과 기술연마를 위해 객지에 있던 시간을 제외하고는 줄곧 용인에서 살았다고 했다.

그가 옷을 맞추는 일에 발을 들여놓은 것은 14살 때였다. 50년 전이다. 용인에서 대흥라사를 운영하던 소진흥 씨를 은사로 재단을 배우기 시작해 16살에 기술을 연마하기 위해 서울로 상경했다. 야학도 다녀봤지만 공부 대신 기술을 선택했다. 군대에서도 재단 일을 하다가 제대 후 1970년 용인에서 가게를 열었다.

그가 용인에서 가게를 열 때만 해도 용인의 구 시가지에는 지금처럼 상가들이 많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주변은 온통 논밭이었고, 초가집들도 있었으며 지금의 농협 자리에 있던 예식장이 그나마 큰 건물이었고 여관이나 다방, 한약방 등이 주로 있었다고 한다. 재래시장은 천주교 성당이 70년대 후반 시장안에 서 인근지역으로 자리를 옮기고 난 후 자리가 넓어져 상권이 활성화 되고 지금의 규모가 됐다고 한다.

# 정성 가득한 김종학표 맞춤복
“제가 개업할 당시에는 용인에 양복점이 10곳쯤 있었어요. 나중엔 25개까지 늘어났지요. 그러다 78년 정도부터 양장점이 하락세가 돼서 점점 줄게 됐죠. 그 때쯤 용인에 한국양복총판이라고 기성복을 판매하는 곳이 들어왔거든요. 사람들이 점차 기성복을 사 입게 되니 양장점들이 점점 줄고 이제 용인 시가지에서 고급양복 만드는 데는 ‘서울라사’하고 저희 ‘문화라사’, 이렇게 둘 정도 남았죠.”
양장점에서 양복을 맞추는 고객들은 어떤 사람들이었을까.

“당시에는 기성복이 없으니 특별한 사람들이 옷을 맞추는 것이 아니라 누구든 양복을 입을 일이 있으면 왔었죠. 지금도 옷을 고를 때 그렇지만 예전에도 사람들은 유행에 대한 정보가 있는 곳, 마음에 맞고 패션 감각이 있다고 생각되는 가게들을 찾았죠. 왜 사람마다 단골이란 게 있잖아요. 어느 집에 가면 자기 집처럼 마음이 편하고 믿을 수 있는 거. 지금은 맞춤복이 사라져 가지만 아직도 저희 가게가 남아있는 것은 제 옷을 찾는 분들이 계시기 때문이에요. 그리고 맞춤복이 꼭 필요한 분들이 계시니까요. 옷이라는 게 참 특이해서 그 사람에게 해야 맛이 나는 게 있거든요. 취향이랄까요. 김종학이 해준 양복이라야 맘에 든다고 하시는 분들이 계세요. 제 보람이죠. 양복이 같은 소재라고 해도 다루는 사람에 따라 옷의 느낌이 참 다르거든요.”

한 길을 50년간 지켜내는 것은 그야말로 장인정신이 아니면 쉽지 않은 일이다. 옷을 만드는데 걸리는 시간은 원단에 따라 달라지지만 한 기능사가 아무것도 안하고 매달릴 때 빠르면 12시간 정도 걸린다고 한다. 원단에 따라 만드는 과정에서 하루 이틀 재워두기도 한다고. 시간이 지나도 형태가 흐트러지지 않도록 하기 위한 것이다.

“고객이 옷이 맘에 든다며 좋아하실 때가 제일 좋죠. 고생했다며 사례비를 별도로 챙겨주시는 분들도 계시지만 투정부리고 트집 잡는 손님도 없진 않아요. 그럴 땐 속은 상하지만 웃어넘기는 수밖에요.”

# 늘 고객에게 감사하는 마음
그의 가게엔 개업부터 지금까지 찾는 단골들이 꽤 있다. 손님들은 김종학 씨보다 나이가 많은 경우도 있지만 대개 그와 비슷한 연배거나 그 보다 어린 사람들이다. 젊어서 결혼 예복을 맞췄던 사람들이 좋은 일이 있을 때 그 아버지, 사위, 아들을 데려와 옷을 해 입힌다고 한다.

“맞춤복이라고 해서 디자인을 바꿀 필요는 없어요. 누구나 자기가 추구하는 디자인이 있고 그 요구를 맞출 수 있는 테크닉이 있으면 요구에 맞게 만들면 되죠. 멋쟁이라는 게 유행을 따르고 비싼 옷을 입는 게 아니라 자기 취향대로, 자기에게 맞는, 잘 어울리는 느낌을 살려 입는 사람이라고 생각해요. 옷에 몸을 맞추는 것이 아니라 몸에 옷을 맞출 줄 아는 사람이요. 아무리 비싼 옷을 입어도 자기에게 맞지 않으면 어딘가 어색하거든요.”

50년간 옷을 만들며 후회한 적은 없었을까.
“후회라기보다는 기술을 배울 때 선배들에게 매 맞으면서 힘들게 배웠어요. 그땐 그만두고 싶은 마음이었죠. 그렇지만 옷뿐만 아니라 어느 방면에서든 그런 일은 모든 기능사들이 다 겪는 일이었죠. 옛날엔 선배나 선생님께 매 맞으며 배웠다니까요. 그렇게 힘들게 배운 기술을 제가 제자들을 키우며 가르칠 때의 보람은 말 할 수 없어요. 지금도 양장을 누가 배운다고 하면 끼고 가르칠 텐데. 요즘은 학력과 자격증을 너무 중시하는 것 같아요. 대학이나 학원 같이 전문적으로 가르치는 곳이 있긴 하지만 기술 연마에는 부족하거든요. 학교에서 배운 다음에 실전에서 다시 교육을 받으면 유능해질 텐데.”

학교에서 옷을 만드는 법을 배운 사람들이 기성복을 제작하는 곳으로 가서 옷의 전체 과정이 아닌 자기가 맡은 한 과정에만 참여하게 되기 때문에 주문을 받아 완성해내는 일까지의 과정을 체득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여러 사람의 손 또는 기계적 과정을 거치는 것이 전인적인 옷만들기 습득을 어렵게 하는 이유로 보았다.

“건강이 따르는 한 고객들과 복장계를 위해 계속 일 할 거예요. 아직은 그만둘 때가 아니죠. 맞춤복에 대한 사람들의 바른 인식을 위해서도 노력할 거구요. 저를 필요로 하고 찾으시는 분들이 계시니 가게를 닫을 수 있나요. 지금까지 ‘문화라사’를 운영할 수 있는 것은 저를 찾아주시는 고객들이 계신 덕인데 늘 고객에게 감사한 마음이에요. 항상 최선을 다해야죠.”

# 각종 사회봉사활동하는 ‘대장님’
사실 그는 용인에서 양복쟁이로만 알려진 것은 아니다. 그의 별명은 ‘대장님’. 27살부터 용인군체육회 이사로 사회봉사활동을 시작하면서 20여개 봉사단체에서 활동했다. 구체적으로 어떤 봉사활동을 해왔는지 알려달라고 해도 그저 손사래를 치며 요즘은 후배들이 하는 일에 고문이나 자문 역할을 할 뿐이라고만 밝힌다. 그래도 꼬치꼬치 캐묻는 기자에게 나중에야 민간기동순찰대에서 대장활동을 했기 때문에 ‘대장님’ 소리를 듣는 것이라고 밝혔다. 지금도 경찰서나 파출소에 가면 그에 대한 호칭은 ‘김 사장님’이 아니라 ‘대장님’이다.

민간기동순찰대 외에도 자녀안심하고 학교보내기 운동 등 교육관련 단체, 라이온스, 로터리, JC같은 국제 봉사단체를 비롯해 용인경찰서 청소년선도위원 등 지역봉사단체에서도 봉사활동을 했다.

“저는 나서는 걸 좋아하지는 않지만 누군가 해야 할 일이라면 내가 먼저 한다는 생각으로 합니다. 대우받으려 한다거나, 평가 받으려고 한 일들은 아니에요.”
그가 용인에서 다방면에서 봉사활동을 하게 된 것은 젊은 시절 체육회 이사로 활동을 하면서 도움이 필요한 곳이 많은 걸 알게 되면서다. 주위를 먼저 생각하며 살았던 덕에 많은 시간들을 봉사활동에 쏟게 됐고 그 때문에 가게를 비우는 시간도 꽤 많았다.

“물론 봉사활동하면 거기에 시간을 쏟아야 하니까 제 일하는 데는 지장이 있죠. 워낙 제가 가게를 비울 때가 많으니까요. 그래도 제 손님들은 그 사람은 언제 가면 있고, 언제쯤에는 자리에 없겠다 하고 다 아세요. 아니면 전화를 해서 약속을 잡고 오시죠. 사업이 뒷전이고 봉사를 우선시했지만 후회는 안 해요. 저를 필요하다고 불러주고 찾는 사람들이 있는데 그런 게 다행스럽고 기쁜 일이니까요.”

‘말은 남보다 뒤에 하고 봉사는 남보다 먼저하자’라는 신조로 열심히 뛰어다니고 있다는 그. 고객들도 그의 스케줄을 알 정도라니 옷을 맞춘다는 게 그냥 옷을 장만한다는 의미를 넘어 서로의 삶에 끈끈한 정을 만들어주기도 하는구나 싶었다.

유성민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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