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인구 삼가동 동백 들어가는 초입, 멱조산 기슭에 한폭의 그림 같은 비구니 사찰 화운사가 있다. 조계종 제2교구 말사인 화운사(주지 선일 스님)는 비구니 사찰로 단아하고 정결하다. 이곳은 지난 1938년 창건됐으니 신라 시대에 불교가 도래한 것에 비춰봤을 때 76년밖에 안된 아주 젊은 사찰이다. 그러나 연원에 비해 용인 시민들은 많은 추억을 간직한 곳이기도 하다. 지금은 중년이 된 용인 시민들이 어렸던 시절, 이곳에 소풍을 왔고, 데이트를 즐겼고, 과수원에 포도 먹으러도 오던 아주 오랜 추억이 간직된 곳이기도 하다. 어찌됐든 젊은 사찰을 증명이라도 하듯 최근 연이어 방문한 화운사 경내에서는 외국인과 비구니 스님들이 영어로 대화하며 거니는 모습을 쉽게 목격할 수 있다. 물론 젊은 사찰이라 해서 외국인을 자주 볼 수 있는 것도 아니고, 특히 스님들과 대화하는 모습을 목격하기가 쉬운 것도 아니니 그만큼 화운사는 남다른 면모가 있는 것이다. 바로 교육도량으로서의 위상을 정립하고 있다.

▲화운사 주지 선일스님
◇학구파 선일스님, 화운사의 새로운 미래 밑그림
인터뷰를 위해 찾은 날 선일 주지스님은 국제불교학교 학장으로서 마침 학사 일정 등에 관한 외국인 강사들과의 회의를 마치는 중이었다. 사찰에서 템플스테이가 아니고는 외국인을 만난다거나, 영어에 능숙한 주지 스님을 만나는 것은 드문 일이어서 신선했다.
화운사는 2011년 3월25일 선방을 보수해 국제불교학교를 개원했다. 조계종이 한국 불교의 세계화를 위해 종단 최초로 비구니 영어전문 특수교육기관인 국제 불교학교를 화운사에 개원한 것이다.
이는 유학파 선일 스님이 중심을 잡고 서 있었기 때문에 조계종에서 믿고 개원한 것이리라.
선일 스님은 용인여고 시절 불교학생회를 조직해 용인 불교발전에 신선한 활력을 불어넣은 주역이었을 정도로 부처님 말씀의 참뜻에 다가가는 길을 멈추려들지 않는 학구적 스님이다. 선일 스님은 1981년 통도사에서 자운 스님을 계사로 사미니계를, 1998년 범어사에서 자운 스님을 계사로 구족계를 받았다. 동국대에서 선학을 전공했고, 운문사승가대학을 졸업했다.
그러나 중국을 통해 들어온 불교 경전이 원전과 다른 점들이 있음을 알고 선일 스님은 원전 공부에 대한 욕심을 접을 수 없었다. 선일 스님은 유학길에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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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님들이 유창한 영어를?… 해외포교의 ‘싱크탱크’
인도 뿌나대학에서 팔리어 및 산스크리트어 석·박사학위를, 스리랑카 페라데니아대학에서 팔리삼장 및 불교학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선일 스님이 10년 동안 스리랑카에서 유학했을 때는 단 한번도 화운사와 전화 통화조차 없이 불경의 원전 공부에만 몰두했다.
국내에서는 선일 스님이 실종됐거나 불교를 떠났다고 밖에는 볼 수 없을 정도였다. 선일 스님은 원전 공부를 모두 마친 후 아무 일도 없던 듯 잠깐 다니러 귀국했다. 2009년이었다.그러나 바로 그때 암이 번져 있음을 발견했다. 선일 스님은 남몰래 지리산으로 몸을 옮겨 암과 사투를 벌였다. 두 번째 실종이었다고 할 수 있다.
선일 스님은 암과의 사투를 벌이면서 경전에 정진해 마침내 암을 이겨내고 2012년부터 화운사에서 영어 법회에 나섰다. 물론 전국에서 원전 공부하러 오는 불자들을 위해 일주일에 한 번씩 원전 강의도 열고 있다. 국제학교에서 공부하는 비구니 스님들 역시도 엄격한 영어 시험을 통해 선발되니, 화운사에는 적어도 영어를 자유자재로 쓰는 스님들만 20여명 존재한다.
국제불교학교는 원어민 강사의 지도 아래 2년간의 수업과정으로 이뤄진다. 과정을 마치면 해외 포교, 조계종 국제회의 및 국제행사의 진행과 통역, 템플스테이 지도 등을 담당하게 된다.
현재 4기생이 공부 중이며, 졸업생들은 아르헨티나, 브라질 등에서 사찰을 운영하면서 포교에 나서고 있다. 또한 불교에 관심이 있는 외국인이 많이 오는 마곡사나 화계사 등에서 외국인 지도에 나서고 있다.

◇경내 ‘아이들을 자유롭게 뛰어놀게 하라’ 눈길
잘 다듬어진 화운사 경내에는 또 하나 눈에 띠는 것이 있다. 보통 다른 사찰에서 보게 되는 ‘경내에서 조용히 하라’는 문구와는 달리 ‘아이들을 자유롭게 뛰어놀게 하라’는 내용의 문구. 그만큼 어린이가 많이 찾는 사찰이라는 이야기다.
선일 스님의 영어법회가 어린이들이 몰려들게 된 계기가 됐다. 영어 소문이 나면서 주위의 어린 자녀를 둔 부모들이 찾아들기 시작한 것이다. 현재는 가족과 어린이 청소년을 대상으로 ‘놀아봐! 꿈꿔바!’ 전문 템플스테이 프로그램을 개발해 특화시키는 등 가족과 어린이를 위한 사찰로 자리매김 했다.
매년 여름에는 임시 수영장을, 겨울에는 임시 스케이트장을 운영할 정도다. 10월에는 군부대까지 함께 하는 한마음 운동회까지 열고 있다.“멱조산은 조상을 찾는 산이라는 효성 깊은 가지고 있지요. 또 산의 모습이 마치 엄마가 두 팔로 감싸 안는 것 같은 형태를 가지고 있는데, 살아있는 아이들을 품에 안는 곳이죠.
미래 불자가 될 씨앗을 키우는 곳이라고 할까요.”어린이 때문에 엄마 아빠들이 불자로 등록하고 일요법회까지 성황리에 운영되는 전국 유일의 사찰이 되기도 했다. 화운사는 특히 지장회 봉사팀 운영이 정성스럽게 이뤄지고 있기도 하다. 아파서 병원에 입원해 있는 환자나 돌아가신 분을 위해 법문으로 아픔을 나누고 있다.
교육 도량, 어린이 도량으로서 화운사의 맥을 영원히 이어나가게 할 선일 스님과 지난해 열반에 드신 비구니계 최고의원로 선지식으로 추앙받았던 지명 스님에 대해서는 훗날의 소개할 기회를 다시 한번 만들어야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