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팽이
최지안
내 껍데기는 아직 더 써도 될 듯하여
조금 더 입고 있기로 했다
가벼운 영혼은 어디에 버릴까 궁리하다가
당신 가슴에 슬쩍 던져두고 왔다
상추를 씻다가 본 빈 달팽이 껍데기
그가 아삭하게 파먹었을 푸른 상추 같은 세상
그 또한 무엇엔가 속을 파 먹힌 집
엄지와 검지 사이에서 바삭하게 부서질
투명한 집의 내부를 들여다본다
영혼이 들어앉은 텅 빈 집
고요란 이런 것이다
입이 꼬리를 물고 꼬리는 다시 투명해진다
나는 달팽이처럼 투명해진다
제4회 남구만 신인문학상 수상
2022년 아르코 창작기금 선정
저서: 수필집『비로소 나는 누군가의 저녁이 되었다』(아르코 우수도서 나눔 선정)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