없다ㅣ배종영

  • 등록 2024.05.20 09:33: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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없다

    배종영

 

늙은 노파는

헐렁한 옷 사이로 보이는

말라비틀어진 젖가슴을

굳이 감추려 하지 않는다

 

가려야 할 성별은 한참 전에 이미 다 빠져나가

더 이상 여며 감출 게 없는 여성,

헐렁한 한 여름 더위를 걸치고

얼마 남지 않은 여자에게서마저 빠져나오고 있다

 

앞마당 꽃밭에 조금 나누어 주고

아장아장 걷는 아이에게 또 조금 나누어 주는

여자라는 뒤끝이

세상 모든 생의 시작점으로 다시 흩어져 간다

 

한때는 흘러넘치던 모성의 징후들이

바짝 마른 말투를 타고 마른 줄기처럼 얽히고 있다

다다를 곳 다 다다르고 이제 몇 군데 남지 않은 곳을 향해

아무런 성별도 없는 늦가을이 간다

 

여성이 떠난 빈자리

꽁꽁, 문을 닫아걸 것이다

 

 

 

배종영 약력

 

고려대 법대 졸.

호미문학상, 천강문학상, 아르코 창작기금, 청송 객주 문학상, 성호문학상, 여수해양문학상 외 다수 수상

시집 <천 권의 책을 귀에 걸고> <사유하는 팔꿈치>.

김종경 기자 iyongin@nat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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