텃밭 가꾸기ㅣ안영선

  • 등록 2025.05.19 09:25: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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텃밭 가꾸기

                           안영선

 

 

그것은 숭엄한 장례일지도 모른다

 

생기 잃은 영혼을 위한 정갈한 의식

봉분마다 하관을 준비하는 땅이 열리고

무심하게 던져진 영혼 위에 뿌려진 흙은 묵언 중이다

 

틈틈이 영혼의 숨결을 살피러 온 고라니 사이

꽃마리, 강아지풀, 쇠비름, 쇠뜨기, 민들레, 명아주, 방동사니, 들깨풀, 중대가리풀, 개비름, 닭의장풀, 개망초, 질경이, 조뱅이, 뽀리뱅이……

애꿎은 것들이 먼저 고개를 들었다

 

땅속에서 문드러진 씨감자는

자신의 낡은 육신을 다 내놓고서야

비로소 지상으로 통하는 문을 열었다

 

한참의 시간을 흘린 불면의 궤적

지상을 뚫고 나오는 저 연록의 생을

환생이라 불러도 될까

 

 

 

안영선|2013년 《문학의오늘》로 등단. 시집으로 『춘몽은 더 독한 계절이다』, 산문집으로 『살아 있는 문학여행 답사기』가 있음.

김종경 기자 iyongin@nat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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