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개지에서
이원오
고층아파트군群을 보면 뼈대가 궁금하다
물과 시멘트의 중량비를 따진다면 진부한 일
저들도 땅이나 산에서 무던히
웅크리고 있을 숙명이었을 것이다
영장류가 불러내어 거대한 도시의 파수꾼으로 세우고
그들이 지켜야 할 곳에 시멘트가 영토를 넓히고 있다
한때 이 땅의 주인공이었을 그들
절개된 곳은 짐승의 마지막 울음처럼 가빠진다
뼈와 뼈를 이어주며 상처가 되어 버린 곳
창신동 길을 걷다보면 언덕이 절규하는 곳마다
저녁밥 짓는 연기가 몽실거린다
축대라는 이름으로 붙어있는 하늘을 이고
사는 사람들
위태로움을 일상화하는 것은
꼬박 밥을 챙겨먹는 것과 같다
끊어지게 마련인 퇴락한 왕조의 계보처럼
후미진 산비탈 쓸쓸한 절개지
중력의 힘으로만 버티는
그들의 결기가 있던 한때를 생각한다
몸의 한 근을 베어가는
노년의 절개지에도
꽃은 핀다
이원오
2014년 <시와소금> 신인상 등단
2018년 시집 <시간의 유배> 출간
현재 한국역리학회 부이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