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인신문 | 내년 지방선거를 앞두고 정치권 일각에서 터져 나온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 지방 이전론’이 수도권과 호남 간의 지역 갈등으로 번지며 거센 후폭풍을 낳고 있다.
이상일 용인시장을 비롯한 지역 정치권은 “나라 망치려는 정치적 술수”라며 강력 반발했고, 주무 부처인 기후에너지환경부는 논란 진화에 급급한 모습이다.
논란의 시작은 지난 12월 10일 이재명 대통령이 주재한 ‘K-반도체 육성전략 보고회’였다.
이 대통령은 “외부에서 생산된 전력을 공급받는 송전망 건설도 엄청난 문제이고 근처에 발전소를 짓는다 해도 액화천연가스(LNG), 열병합발전소 수준인데 그걸로 할 수 있을지”라며 의문을 나타냈다. 이날 이 대통령의 발언은 ‘아이디어 제시’ 차원이었다.
그러나 김성환 기후에너지부 장관이 같은 달 26일 라디오 방송에서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용인에 쓰게 될 전력량이 원전 15기 분량”이라며 “송전망 건설 부담을 고려할 때 에너지가 생산되는 남쪽 지방으로의 이전을 고민해야 한다”고 밝혔다.
이 발언은 즉각 전북 지역의 새만금 유치론으로 불을 지폈다. 전북도의회와 전북 지역구 국회의원들은 “새만금은 송전탑 없이 RE100 전력을 즉시 공급할 수 있는 기회의 땅”이라며 용인 국가산단의 새만금 분산 배치를 촉구하고 나섰다.
내년 6월 지방선거를 앞두고 지역 표심을 겨냥한 ‘정치적 선동’이 가세하면서 논란은 걷잡을 수 없이 확산됐다.
■ 이상일 시장 “국가 경쟁력 포기” 반발
용인시는 즉각 정면 돌파에 나섰다. 이상일 시장은 지난달 31일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는 이미 1000조 원 규모의 투자가 확정되어 보상과 인허가가 진행 중인 ‘본궤도’에 오른 사업”이라며 “반도체는 속도와 집적이 생명인데, 이제 와서 이전을 논하는 것은 국가 경쟁력을 포기하겠다는 것과 다름없다”고 맹비난했다.
이 시장은 “내년 지방선거에서 일부 지역의 표를 얻어 보겠다며 정치적 술수를 부리는 것으로 보인다”며 “국정 운영을 책임진 여권 일각에서 터무니없는 주장이 나오면 나올수록 정부와 여당에 대한 국민의 신뢰는 떨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김동연 경기지사를 향해 “경기도의 핵심 산업이자 대한민국 경제의 심장인 반도체가 정치의 소용돌이에 빠져 혼선과 혼란이 생기고, 용인시민을 비롯한 경기도민들이 불안해하고 있는데 왜 침묵하고 있나”라고 따지기도 했다.
지역구 국회의원들도 한목소리를 냈다. 더불어민주당 이언주·이상식·손명수·부승찬 의원은 지난 30일 국회에서 공동 기자회견을 열고 “김 장관의 경솔한 발언이 시장에 불필요한 혼란을 주고 있다”며 “수십 년간 형성된 반도체 생태계를 정치 논리로 망가뜨리려는 시도를 즉각 중단하라”고 촉구했다.
국민의힘 역시 논평을 통해 “국가 전략을 흔드는 포퓰리즘적 발상”이라며 정부 차원의 명확한 해명을 요구했다.
■ 기후부 “취지 와전”… 반도체 업계 ‘냉담’
파문이 커지자 기후에너지환경부는 “장관의 발언은 지산지소(생산지에서 소비)형 시스템의 필요성을 설명하는 과정에서 나온 원론적 고민이었을 뿐, 실제 이전을 염두에 둔 것은 아니다”라고 공식 해명했다.
그러나 업계의 시각은 냉담하다. 이미 SK하이닉스는 용인 원삼면에 600조 원을 투입해 1기 팹의 뼈대를 올리고 있으며, 삼성전자가 들어설 이동·남사읍 국가산단 역시 LH와 삼성전자가 부지 매입 계약을 마치고 보상 절차에 돌입한 상태다.
기업들은 “이미 막대한 매몰 비용이 발생한 상황에서 이전 논의 자체가 글로벌 경쟁력을 갉아먹는 시간 낭비”라고 탄식하고 있다.
■ ‘정치 논리’ vs ‘경제 논리’ 격돌
반도체 전문가들은 반도체 산업이 수도권에 집중되는 이유가 전력뿐 아니라 ‘인재 수급’과 ‘기존 생태계(소부장 업체)와의 인접성’ 때문이라고 지적한다.
28개월 만에 공장을 완공한 일본 TSMC 등 글로벌 패권 경쟁 속에서 한국만 내부 갈등으로 자멸할 수 있다는 우려다.
결국 이번 논란은 내년 지방선거를 앞둔 정치권의 ‘여론 떠보기’ 성격이 강하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이렇다 보니 이상일 시장은 기획재정부 장관을 만나 ‘교통 인프라 조기 구축’ 등 정부의 전폭적 지원을 재확인받으며 쐐기를 박았다.

지난달 31일 이상일 용인시장이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 지방이전 논란과 관련, 긴급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