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은규 시인의 시로 쓰는 편지 46 |슬픔은 자랑이 될 수 있다 |박준

  • 등록 2015.01.26 16:08:08
크게보기

이은규시인의 시로 쓰는 편지 46



슬픔은 자랑이 될 수 있다


박준


철봉에 오래 매달리는 일은
이제 자랑이 되지 않는다

폐가 아픈 일도
이제 자랑이 되지 않는다

눈이 작은 일도
눈물이 많은 일도
자랑이 되지 않는다

하지만 작은 눈에서
그 많은 눈물을 흘렸던
당신의 슬픔은 아직 자랑이 될 수 있다

나는 좋지 않은 세상에서
당신의 슬픔을 생각한다

좋지 않은 세상에서
당신의 슬픔을 생각하는 것은

땅이 집을 잃어가고
집이 사람을 잃어가는 일처럼
아득하다

나는 이제
철봉에 매달리지 않아도
이를 악물어야 한다

이를 악물고
당신을 오래 생각하면

비 마중 나오듯
서리서리 모여드는

당신 눈동자의 맺음새가
좋기도 하였다

.................................................................................................................................................

여기 “슬픔은 자랑이 될 수 있다”고 말하는 시인이 있습니다. 떠올려보면 어릴 적 우리는 “철봉에 오래 매달리는 일”을 자랑스럽게 생각했지요. 하지만 철봉 오래 매달리기는 더 이상 자랑이 아닙니다. 또한 섬약한 문인이라면 통과의례와도 같았던 “폐가 아픈 일도/이제 자랑”은 아니지요. 이러한 상황에서 “당신의 슬픔은 아직 자랑이 될 수 있다”고 당당히 말하는 젊은 시인. 어쩌면 “좋지 않은 세상에서” 충만한 것은 “당신의 슬픔”뿐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땅이 집을 잃어가고/집이 사람을 잃어가는 일”이 다반사이기 때문이지요. 우리는 매일 아침 “철봉에 매달리지 않아도/이를 악물”며 하루를 시작합니다. 그럴수록 사랑은 아득하고 아득하기만 한데요. 그래서 “이를 악물고/당신을 오래 생각하면” 할수록 “당신 눈동자의 맺음새가/좋기도 하였”던 것이겠지요. 아껴놓은 슬픔인 듯 아닌 듯, 당신이라는 이름.


이은규 시인 yudite23@hanmail.net
이은규시인 기자 yutide23@hanmail.net
Copyright @2009 용인신문사 Corp.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용인신문ⓒ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지삼로 590번길(CMC빌딩 307호)
사업자등록번호 : 135-81-21348 | 등록일자 : 1992년 12월 3일
발행인/편집인 : 김종경 | 대표전화 : 031-336-3133 | 팩스 : 031-336-3132
등록번호:경기,아51360 | 등록연월일:2016년 2월 12일 | 제호:용인신문
청소년보호책임자:박기현 | ISSN : 2636-0152
Copyright ⓒ 2009 용인신문사. All rights reserved.
mail to yonginnews@daum.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