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 개의 별 이야기 (정丁 - 의심과 개혁의 불꽃을 가진 자)
정화(丁火)는 지상의 불이며, 인간이 세상을 변화시킬 지식이 된다. 그런 불을 인간에게 선물로 준 티탄족인 프로메테우스는 독수리에게 매일 새로 돋아난 간을 파 먹히는 고통을 맞이하게 된다. 만물을 키우는 제우스가 병화(丙火)라면, 만물을 죽여서 새롭게 태어나게 하는 것이 프로메테우스의 정화(丁火)다.
정화의 삶은 아프다. 어두운 곳을 볼 수 있기에, 있는 그대로를 받아들이지를 못하는 속성이 있다. 또한 불의 힘은 모든 것을 변형시키고 바꾸고 새롭게 할 수 있는 힘이 있다. 불이 있어야 쇠가 만들어진다. 그리고 쇠는 자연을 바꿀 힘과 권력과 풍요를 낳지만 그 대가는 죽임으로 탄생하기에 아플 수밖에 없다. 그래서 정화(丁火)를 멸화지기(滅火至氣)라고 칭한다.
정화(丁火)는 에덴동산의 선악과와 같다. 어둠을 비추는 눈이며, 잘못을 찾아내고 변화를 도모하는 개혁의 정신이 된다. 그래서 정화에는 반항의 정신이 깃들어 있다. 아무도 믿지 않고 아무것도 정하지 않는다. 노력하고 머리 굴린 만큼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수고와 노동이 존재하는 고통의 길을 서슴없이 도전한다. 따라서 자신만을 믿는다. 자신이 본 것만을 믿고, 자신이 옳다고 하는 것만을 증명하듯이 산다. 정화의 세상은 너무 작아서 따로 논다. 마치 전문가들이 각자의 등불을 들고 자신이 본 것만이 옳다고 이야기 하는 것 같다. 기술의 세계이며 비밀과 노하우가 있고, 그것은 곧 부와 권력의 지식을 뜻하기도 한다. 하지만 지상의 불인 정화(丁火)는 몇몇 사람만을 따뜻하게 할 뿐이다. 그래서 기술의 편중과 부익부 빈익빈의 현상을 낳고 정화의 쓰임에 따라 그 레벨이 정해진다.
정화(丁火)는 악마이다. 그것이 곧 인간의 정신이기 때문에 그렇다. 하늘의 태양인 축복의 병화(丙火)를 버리고 우린 신이 금기시 했던 악마가 건네준 정화를 택했다. 뭐든 고치고 부시고 파괴하고 다시 만든다. 신보다 더 우월한 창조의 기쁨을 맛보기 위해 어떤 짓이든 서슴지 않고 한다. 인간이든 동물이든 어떤 것이든 다 죽여서 인간의 뜻에 맞게 다시 창조하려 든다. 그래서 불은 재앙을 뜻한다. 결코 행복하지가 않다. 멋대로 맘대로 뜻대로 다 해보고도 부족함을 느끼는 것이 정화가 된다. 정화의 불은 끊임없이 먹어치우고 토해내고 또 먹는다. 결국 인간의 삶이란 그런 술과 쾌락이 있는 불의 욕정에 사로잡혀 사는 불나방 같은 것일지도 모른다. 정화는 문명이며, 도시의 불빛이지만, 우리의 순수한 마음을 잡아먹는 욕정도 된다. 정화에겐 나눔이 없다. 같이 함도 없고 공유도 없다. 자신만의 진실성으로 불같이 타올라 스스로의 의지를 일관할 뿐, 불을 가진 권력으로 그 어느 것도 무서워하지 않는다. 단지 더 강력한 총을 갖고 폭탄을 만들고 무시무한 힘의 불덩어리만을 원할 뿐이다.
선각자라는 뜻의 이름을 가진 프로메테우스가 인간에게 불을 건네주면서 무슨 생각을 했을까? 아니면 뱀의 모습을 한 천사루시퍼가 아담에게 선악과를 먹으라고 했을 때 그 마음은 어떤 것이었을까? 신에게 대항할 수 있는 금기된 지식을 주고자 했던 그들의 뜻이 정말 사악하고 나쁜 의도만 있었을까? 어쨌거나 보이는 대로 보지 않고, 느껴지는 대로 느끼지 않는 의심의 힘을 가진 정화의 인간들은 똑똑하다. 효율과 실용성만을 요구하는, LED의 불빛처럼 차갑고 이기적인 화려한 문명의 도시는 그들의 작품이 된다.
노아의 홍수도 정화의 광기를 없애버리진 못했다. 어쩌면 우린 아직 제대로 불을 다룰 수 있는 그런 존재는 아닐 듯싶다. 덜 성숙한 인류여서 쾌락의 불에 휩쓸리고 그 불에 타 죽는다. 하지만 진짜 정화는 재생과 보존의 의미를 가진 아름다운 불빛이다. 아픈 자를 치료하고, 버려진 것들을 새롭게 하며, 더럽고 불편한 것을 이롭게 만드는 기술이다. 그래서 인간을 인간답게 살게 하고자 하는 지혜와 자비의 마음이 된다.
불 자체는 결코 선하지도 나쁘지 않다. 그것을 다루는 우리의 마음과 성숙됨이 문제가 된다. 그래서 정화(丁火)가 진정 아름다운 정화(淨化)의 불꽃이 되려면 세상에 널린 아프고 힘들고 고통스러운 곳을 피하지 말고 찾아내어야 한다. 고통을 태우고 해결하는 정화만이 가장 아름다운 정화가 될 테니까. 불은 촛불처럼 스스로 타는 고통을 감내하여 세상을 비출 때 가장 아름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