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일 후손이 펄펄 나는 시대에
퇴계 이황은 경서문리(사서삼경으로 깨우침)가 난 선비이고, 남명조식은 경서문리와 사서문리(사마천의 사기로 깨우침)가 두루 통달한 선비이다. 그런 연유로 사람을 보는 안목인 지인지감이 퇴계하고는 많이 다르다.
한번은 퇴계 문하에 공부하겠다며 어린 선비가 찾아온다. 퇴계는 제자를 받을 때 꼭 시험을 치는데 일주일간 숙식을 함께 하며 그 성품을 본다. 어린 선비는 퇴계 문하에서 공부하고 싶은 마음이 어찌나 간절했던지 시험에 합격할 요량으로 일주일동안 밤을 세워가면서 사서삼경을 재독삼독하며 준비를 한다.
시험 당일 날 퇴계는 말한다. 일주일간 지켜본 결과 야성(野性)이 인성(人性)을 이겼구나. 그깟 시험이 무슨 그리 대수라고 낮에 일하고, 밤에 쉬는 것이 하늘의 이치이거늘 하늘의 이치를 거역하는 밤을 세워가면서까지 공부를 한단 말인가.
“그런 강한(剛寒)을 난 감당할 수가 없네”라며 내 친다. 그러자 어린 선비가 무릎을 꿇고 울면서 말한다. “선생님 문하에서 공부하고 싶은 욕심이 강할 뿐이지 야성이 인성을 무너뜨릴 만치 그런 강한은 아닙니다”라고. <금오랑이 부의 판관(判官)을 체포(逮捕)하는 장면. 해동소학(海東小學)때 배움>
당시 제자들과 함께 유람을 하던 중 요기할 요량으로 들른 주막에서 소문을 들은 남명은 “고래로 구걸하는 동냥치도 어릴 때는 문전박대해서는 안 되는 법이거늘, 하물며 어린 선비를 박절히 대한 데서야”라며 몸소 찾아가서 제자로 거두고, 그 야성을 고치라며 몸소 차고 있던 경의검(敬義劍)이라 이름 한 검을 준다.
그 어린 선비가 장성해서 광해 때 정승이 된 북인의 거두 내암 정인홍이다. 남명은 일생에 두 명의 제자를 찾아가서 거뒀는데 내암과 또 한 제자가 남명의 고제 덕계(德溪) 오건(吳健) 문하에서 경서(經書)로 문리(文理)를 깨우친 김희삼(金希參)의 자(子) 직봉포의(直峰布衣) 동강(東岡) 김우옹(金宇顒)으로 방울 성성자(惺惺子)를 물려받은 인물이다.
훗날 남명의 외손녀와 결혼했고, 망우당 곽재우와 동서지간이며 동강의 만사(輓詞)를 쓴 한강(寒岡) 정주(鄭逑)와 더불어 성주 땅의 양강(兩岡)으로 명불허전의 인물이다. 그의 13대 손이 독립운동가 심산(心山)으로 의성 김 문(門)의 휘(諱) 창숙(昌淑)님이시다. 중수(고 박정희 전 대통령)는 부모를 제외한 일생에 두 번 무릎을 꿇는데 그중 한번이 심산이라 전(傳)한다.
김종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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