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입에서 당신의 뺨까지ㅣ안토니오 가모네다/최낙원 옮김

  • 등록 2021.03.02 10:05: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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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입에서 당신의 뺨까지

                              안토니오 가모네다/최낙원 옮김

 

 

내 입에서 당신의 뺨까지

쓰디쓴 길이 뻗어 있다

벌거벗은 당신의 가슴

내 손에 재를 뿌린다

 

당신의 시선과 내 목소리 사이에

죽음이 떨고 있는가

 

안토니오 가모네다는 1931년 5월 30일, 스페인 오비에도에서 태어났다. 아버지 역시 시인이었는데 『또 다른 더 나은 삶』이라는 시집을 남기고 가모네다가 한 살 때 세상을 떠났다. 어머니 아멜리아 로본의 건강 때문에 1934년 레온의 변두리 철도 옆 빈민가로 이사했다. 그는 학교를 다니지 못했다. 아버지의 시집으로 글을 깨우쳤기 때문에 글자와 시가 함께 왔다고 술회한 바 있다.

가모네다는 자신을 “시를 쓰는 프롤레타리아”라고 말한다. 유년기의 가난으로 인한 고통스런 기억과, 전쟁의 역사 속에서의 절망과, 부조리한 사회에 대한 투쟁이 환상성의 언어로 응축된 그의 시편들은 고뇌와 갈등에서 피어난 붉은 꽃과 같다고 평가한다.

스페인의 문학평론가인 호세 안토니오 폰데 파르는 “그의 시는 감성에서 비롯된 본능적이고 직관적인 시어들로 가득 차 있고, 어떤 언어로도 품을 수 없는 신비를 담고 있다.”고 말한다. 그는 2006년에 전 세계 스페인어권의 노벨상으로 불리는 세르반테스 상을 수상했다.

가모네다는 “시인은 자신이 알고 있는 것을 모르는 자다. 그래서 시는 소수 지향적이고 외로울 수밖에 없다. 시는 창조의 영역에 속하는 것이고, 그래서 가끔은 존재하지 않는 것을 만들어 낼 수도 있다. 시는 현실을 그대로 반영하지 않는다. 주관적으로 내면의 소통을 추구한다.”고 설파한다.

「내 입에서 당신의 뺨까지」는 목숨 걸고 하는 사랑의 본질을 꿰뚫어보는 시다. 화자는 입술에서 사랑하는 이의 뺨까지에는 쓰디쓴 길이 뻗어 있음을 고백한다. 그 소통의 길은 쓰디쓸 뿐 아니라 거칠고 험난하기도 할 것이다. 사랑하는 이를 애무하고픈 손을 뿌리치는 것은 사랑의 감정에 재를 뿌리는 일이다. 그러나 이 시의 시안이 숨어 있는 연은 마지막 연이다. 당신의 시선은 먼 곳에 머물고 화자의 목소리는 애절해서 곧 파탄에 이를 것 같은 긴장을 보인다. 아니나 다를까. ‘죽음이 떨고 있는가’라고 비통한 절창을 던지고 만다. 죽을 수밖에 없는 사랑이다. '문학의 숲' 간 『내 입에서 당신의 뺨까지』 중에서. 김윤배/시인

김윤배 기자 poet0120@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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